[3월 14일]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단 5: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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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바벨론의 벨사살 왕이 귀족 1000명을 모으고 연회를 베푸는 광경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날은 바벨론 왕국의 멸망의 밤입니다.

바벨론 성벽은 높이 107미터이고 폭이 26미터나 되며, 성 안에 넓은 토지가 있으며 유프라테스 강이 그 성을 관통하여, 공성전을 한다 하더라도 음식과 물이 부족하지 않은 요새이므로, 전쟁 중에도 권력층에는 유흥 문화가 번성하고, 잔치를 여는 것이 상황적 배경(5:1)입니다. 나라가 커지며 발전할 때에 공헌한 사람들은 그 공적으로 귀족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며, 그들은 도덕적 무감각과 윤리의 상실이라는 죄악으로 흐르게 됩니다. 이 연회는 이러한 권력자들의 결속을 다지는 정치행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정치(막 10:43-45)는 ‘내어주고, 섬기며, 다스리는 것’이며 작은 밀알로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입니다.‘섬기며 다스리는’는 한마디로 십자가 앞에 내 자신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대하여 자신을 낮추면 나의 자존감이 무너지지만 십자가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낮출 때에는 가장 높은 자의 오른손의 영광으로 긍휼과 온유함으로 다스리는 자가 됩니다.

벽에 나타난 손가락으로 글을 쓰는데, 이로 인하여 연회 중에 왕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고 생각이 번민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이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심판주로 임재함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이사야는‘화로다 나는 부정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섰나이다’(사 6:13)라고 자복합니다. 우리 모두는 동일하게 공의로운 심판자 앞에 영광의 무게로 말미암아 자복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지나간 우리의 모든 행적이 드러날 때 우리는 이와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 날을 준비하는 지혜의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모두가 벽에 글이 써진 그 사건을 풀이하지 못하고, 왕의 번민에 왕후가 다니엘을 추천합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단 5:12)라고 소개됩니다. 이때의 다니엘은 족히 80세를 넘긴 노인입니다. 연회의 특징은 술 취함입니다. 1-4절은 일련의 ‘술에 취함’입니다. 벨사살 왕은 술에 취하여 민첩과 지식과 총명이 없이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하나님의 기명을 내오게 하고 그것으로 술을 마시며 술기운에 신들을 찬양합니다(4절). 술 취한 것은 (민첩과 지식과 총명이 없이) 영원히 잠을 자는 것이며 이로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상숭배에 취한 것입니다. 이는 세상 것을 쫓는 마음의 비둔함입니다. 이는 수용과 저항의 차이점으로, 포도주를 거절하는 소년 다니엘(1:8)은 술 취하지 않고 마음이 비둔해지지 않으려는 저항(믿음)의 다니엘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때에 이미 80세에 이른 다니엘의 신앙은 여일(如一)합니다. 그는 지독히도 변하지 않는 이 세상, 벨사살 왕을 보면서 낙담하고 비탄에 젖게 됩니다. 몇 번 죽음으로 복음을 전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비탄은 다니엘의 눈물이며 하나님의 눈물이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고 비탄에 빠져 하신 말씀(마 23:37, ‘모으려한 일이 몇 번이냐’) 입니다.

부름 받은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의 지나온 과거(역사의 교훈)를 이야기하고 그 글씨를 풀이해 줍니다. 벨사살이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5:23)은 그의 아버지의 죄와 그 결과를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세상 권력에 취해 있는 것입니다. 이 심판의 메시지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입니다. 벨사살에 주신 말씀이 이 세상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라면 우리도 이 말씀 앞에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아람어 자음으로 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메네 메네’) 확실히 계수하시고 (‘데겔’) 저울에 달아보시는 분이며,‘우(그래서) 바르신(찢어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애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영혼이 깨어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 달란트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자신이 뿌리지도 않은 열매를 거두며 살아가는 자도 있고 어떤 자는 언 땅을 녹여가며 노력하지만 하나의 열매도 맺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감사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의 하나님으로 주신 만큼 거두실 것으로 그 열매를 공평하게 계수하시고 저울에 달아 보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복음의 빚진 자로서의 ‘빚진 것’은 첫째로 갚지 않는 것이며, 둘째로 맡긴 것을 전달하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나누지 않음으로 복음에 대하여 빚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결과는 권한과 위엄을 빼앗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실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주신 자에게 그 주신 것을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주인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떠난 다윗은 인간 냄새만 풍기는 자이며 다른 권력자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촛대를 압살롬에게로 옮기셨습니다. 첫 마음을 잃은 자에게서 촛대를 옮기신 것입니다(계 2:5). 내 마음이 무엇에 비둔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며 영적 권위를 선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저에게 영향력을 끼쳐온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달라진 영적 지도자의 모습을 보면서, 교회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데 어느새 교회 안에 사람 냄새만 풍성하고 정체되고 있음으로 보게 됩니다.

결론으로 벨사살이 심판을 받게 된 결정적 이유는 하나님의 기명을 가져다가 술을 따라 마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이며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이 그릇에 세상의 술로 가득차서 부패하고 우상 숭배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계수하시고 저울에 달아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고 두려움(우바르신)과 감격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어 마음의 비둔함을 깨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소진하고 땅 끝에서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깨어 있는 우리가 되실 것을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