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엡 4: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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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대에서 1970년까지 우리나라의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 발전되었고 70년대 이후에 교회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인 ‘지상 대명령’(마 28:18-20)의 말씀을 붙들고 선교에 관심을 두고 열심을 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안으로부터 문제가 생기게 되어 오히려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불균형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요, 이는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의 개념(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교회는 자성하고 선교의 방향성을 다시 한 번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상 대명령 이전에 있었던 원론적인 부르심(창 1:28, 선교학적으로는 문화 명령)으로 돌아가서 보아야 합니다. 지상 대명령이 하나님의 부르심(구원)에 응답하는 것이라면, 문화 명령은 하나님과 화목된 자들이 예수님 주권에 의거해서 어떻게 (왕같은 제사장으로) 이 땅을 살아가야 하는가 입니다. “지상 명령이 예수 구원이라면 문화 명령은 예수 주권”입니다. 이는 근본적인 부르심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지난 몇 주간 다니엘서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념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실제의 교회시대 -천년 왕국, 무천년설)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주신 근본적인 목적(창 1:28,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모든 것을 다스리라)을 사람들에게 위임해 주셨습니다. 창 2:5, 15은 창조의 반복으로 사람이 창조된 세계에서 하나님의 창조에 일조를 하게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1장은 ‘다스려라’라고 말씀하며, 2장은 ‘경작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경작하는 존재입니다(기뻐하는 열매를 맺어라). 하나님의 통치에는 직접통치와 간접통치가 있습니다. 직접통치는 창조 시에 심어 놓으셨던 하나님의 의도(필연과 본능)가 표적과 기사로 나타나고, 간접통치는 사람의 성장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은 사람을 초청하시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경작함으로 그 형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사람이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는 옮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감으로) 사람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부르심이지만 사람으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체로 이 땅에 계실 때에 가장 효율적으로 선교하실 수 있었겠지만 사람을 사용하셔서 그 선교를 사람과 함께 하시고 성취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은 신학적으로는 비공유적인 속성과 공유적인 속성을 말하는데, 전지전능하심은 비공유적인 특성의 대표적인 것이며, 공유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지 정 의)을 가진 사람으로 세상을 경작하게 하신 것입니다. 인격은 정체성의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동물은 본능으로 행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된 것에 이름을 짓도록 하게 하신 것은 통치이며, 통치할 피조물의 성격을 정의해 주는 것입니다. 이름에 의하여 권위가 생기고 힘이 생기고 정체성을 부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통치행위입니다.

타락하기 전의 아담은 정체성을 명확하게 파악하여 하와를 여자라고 말하며 남자와 여자의 올바른 이름을 갖게 합니다(연합하여 하나이다). 올바른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락 후의 아담은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 후손을 보겠습니다. 아벨은 문제를 가지고 경작하여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는데, 하나님과 원수 되는 방법으로 가인을 죽여서 그 문제의 해결을 찾습니다. 홍수 이후로 흩어진 백성들은 바벨탑을 높게 쌓아 올리고, 역청(방수제, 또 다른 홍수 심판을 피하기 위하여)을 발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해보자는 것입니다. 이에 절정은 아론의 금송아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한 것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의아하기조차 합니다.

아담에게 가죽 옷을 주신 것, 아브라함과 이삭의 어린 양, 출애굽의 문설주의 피, 레위기의 5대 제사, 민수기 놋뱀, 신명기 말씀 자체로 오신 분, 여호수아의 라합의 붉은 줄, 사사기의 민족의 구원자인 사사들, 룻기의 기업 무를 자, 열왕기상하의 실패한 왕들을 통하여 구약성경 내내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루실 새 창조를 말하는데, 이는 무너진 형상이 회복하게 되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며 그리스도로 우리의 소속이 변한다(요 5:24,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새 생명을 가지고 새 신분과 새 지위를 주시며 구원의 보증(구원의 인)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을 기다리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붙들고 초대 교회의 120명의 제자들은 성령이 오심을 기도했는데 오순절에 성령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온몸이 성령에 사로잡히는 불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초대교회에는 사도 바울 같은 급진적 경험이 있으며, 빌립보, 에베소 교회는 천천히 변화되었습니다. 성령의 임재하심과 내주하심의 모양은 다를 수 있으나 성령의 임재의 결과는 모두 같은데 그것은 성령의 9 가지 열매(갈 5:22-23,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재)를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요 성품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성령(예수님)의 성품이 선물이 되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우리의 삶 가운데 드러나는 것이 왕같은 정체성(성령의 성품)으로 하나님 나라를 경작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첫째 덕목은 온유함으로 분내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교회)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임재와 열매의 나타남은 서로 다릅니다. 임재는 급하게 오는 것이며 열매는 꾸준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거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성화의 삶입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갈 5:22-23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금지할 법이 없다는 것으로 힘들 때마다 기도로 평강을 누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것을 따라 큰 나무로 자라실 것을 바랍니다.

예화를 하나 들겠습니다. 연전에 세코야 파크에 갔을 때 본 소개 문구는 ‘끝까지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제네랄 셔면 트리는 약 2500년이 되었습니다. 그 나무는 온갖 역경(산불, 지진, 광풍)을 견디어 내고 그만큼 성장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영적 광합성과 말씀의 수맥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그리스도의 온유한 성품)까지 자라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 예수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성령이 내주하시고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거목으로 자라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