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그릇론(딤후 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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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종종 사람을 그릇에 비유합니다, 예레미야에는 토기장이의 그릇에 이스라엘을 비유합니다(렘 18:1-12, 참고 사 45:9). 신약에는 바울은 나의 택한 그릇이다(행 9:10-21). 베드로전서(3:7)에는 아내들을 생명을 담는 연약한 그릇이다. 그리고 서신서의 여러 곳에서 우리가 질그릇 됨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자녀이고 군사이고 편지라는 여러 가지 정체성을 이야기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릇이라는 정체성(그릇론)을 정립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큰집에는 목적에 따라 귀하게 그릇들도 있고 아주 편안하게 날마다 쓰는 그릇도 있고, 큰 그릇도 작은 그릇도 있습니다. 로마서에는 하나님께서 토기장이로서 진흙 한 덩이로 그의 필요에 따라 그릇을 만드셨다(롬 9:20-21)고 말씀합니다. 갖가지 물질로 된 그릇은 하나님께서 필요하신대로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은 목적에 따라 쓰는 것으로 차별이 아니라 구별입니다(2:20).

첫째,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쓰는 그릇이나 편안하게 그릇이나 그 재질에 감동받지 않으십니다. 그릇은 창조주의 목적에 따라 쓰여질 때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릇으로의 정체성은 하나님께 쓰임 받고자 하는 바람(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할 때 재질에 관계없이 쓰임 받는 그릇이 귀히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은 충성할 때 귀함(감동)을 받게 됩니다. 깨끗하고 순전한 마음(깨끗한 심령)을 품어 귀히 쓰도록 준비되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고후 2:21)

둘째는 선하게 이미 준비되어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행 9:15).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이방인, 임금들,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그릇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다소(이방 땅)에서 태어난 자로 헬라어로 (능통하게) 말할 수 있는 그리고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방인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자이며, 히브리인들에게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자이며, 로마시민권이 있어 총독들과 로마황제의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그리고 경험한 것(전인적인 정체성)은 이유 없는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일에 이미 선하게 준비시키시고 우리를 빚어 가시는 토기장이의 손길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우리를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우리를 말씀으로, 흙으로 빚을 때부터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동선 선교사님은 10가지 도자기 제조과정을 통하여 우리를 빚어 가시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1) 생각. 어떤 도자기를 만들 것인가,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에 따라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2) 자료를 준비합니다. 부르심과 은사가 준비되도록 하십니다.

3) 흙 안의 불순물을 걸러냅니다. 우리 생각의 불순물을 걸러냅니다(그리하여 잘못되지 않는 성도의 견인)

4) 흙을 반죽하기 시작합니다. 반죽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고난의 과정이 있게 됩니다. 이를 끈기 있게 견디어 내게 됩니다.

5) 준비된 흙을 녹로(도자기 물레) 위에 올려놓고 빚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올바른 중심을 잡고 만들어 갑니다. 가끔 우리의 계획이 무너지는 것 같으나 예수 중심, 복음중심을 가진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6) 만들어진 것을 건조실로 들여갑니다. 이때는 토기장이의 숨결(하나님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고 우리는 혼자 있는 것처럼 말라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7) 다 마른 도기에 문양과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성품을 새겨 놓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새겨 놓습니다. 창조주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8) 초벌구이, 가마에 넣고 450-750도 의 열기에서 유기물질들이 다 태우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내면의 변화, 아픔과 상처를 다루시고 회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9) 유약을 바릅니다. 잘 마른 도자기는 유약을 아주 잘 빨아드립니다. 유약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성령의 임함)을 의미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성령을 사모함으로 성령의 은혜를 잘 받아 드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10) 재벌구이, 1250도의 가마의 뜨거운 불길 속에서 유약과 진흙이 화학작용으로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도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이 유익하게 되어 주의 향기를 나타내는 성령의 사람(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으로 빚어지는 과정입니다. 토기장이는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만의 합당한 부르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쓰임 받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입니다.

그릇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만들어진 그릇인 우리에게 그리스도라는 보배(하나님의 나라)를 담기를 원하십니다(고전 4:7). 진리는 양날의 칼과 같이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온유와 겸손의 그릇에 담아서 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구약에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지만,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영광이 그리스도라는 질그릇을 통하여,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 것(그리스도가 영광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라는 은총을 통해서 입니다.

마태복음 5장의 8복은 심령이 가난한 그릇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담길 것이요, 애통하는 그릇 안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담길 것이요, 온유한 유업의 그릇 안에는 땅이 담길 것이요, 의에 주리고 굶주린 그릇 안에는 하나님의 풍성함이 담길 것이요, 긍휼히 여기는 그릇 안에는 긍휼이 담길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그릇 안에는 친밀함이 담길 것이요, 화평하게 하는 그릇 안에는 참된 하나님의 자라는 일컬음이 담길 것이요, 핍박과 환난이라는 그릇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보배가 담길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십니다. 저는 연전에 영혼을 비춰주시는 한 말씀으로 작고 좁은 저의 그릇을 찢고 넓혀 그리스도의 풍성한 사랑을 담아 주시기 위한 그릇으로 키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빚어진 그리스도의 보배를 담는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릇론의 가장 중요한 말씀은 하나님의 주재권입니다. 로마서의 토기장이의 예화는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며, 하나님께서 선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행하신 일이 선한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결론입니다. 주인을 바꾸는 일이 회개입니다. 심령을 깨끗하게 바꾸고 내 마음의 주인을 그리스도로 바꾸는 일입니다(벧전 3:15). 예수님을 죽기까지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활을 지혜라 하며, 야망을 비젼이라 하며, 은혜를 게으름으로 합리화 합니다. 나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누구인가를 알고 고백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종으로 순종하고 충성함으로 이 땅에서 받을 것이 없는 무익한 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불러 주셨기 때문에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에스라서 8장에 보면, 금은과 같은 화려한 기명(기물)들이 성전으로 들어 갈 때에 ‘아름답고 빛나, 금같이 보배로운’놋그릇 두개가 바쳐졌다고 말씀합니다. 이 놋그릇 안에 무엇이 담겨있었길래 이러한 표현이 되었을까요, 이 놋그릇처럼 우리가 깨끗한 그릇으로 그리스도를 그 안에 담아 하나님께 충성하는 그릇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