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8일] 사사기강해(1) 내가 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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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은 사사기의 첫 절과 마지막 절입니다. 사사기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온전한 회개와 회복으로 받아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시고자 하시는 선하신 뜻으로, 온전한 회개와 회복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사사기는 큰 역사의 흐름 속에서의 일상의 삶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기의 노예의 삶, 민수기의 광야의 삶(생존), 그리고 여호수아서의 전쟁을 살아 왔습니다. 결정할 수 있는 힘도 없이, 만나도 없이, 새로이 땅을 경작하여 정착하는 문화를 이루어가는 현실세계의 삶을 말하여 줍니다. 12사사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를 거울처럼 반영합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어 갈 수 있습니다.

모세나 바울은 우리와 친근하지는 않지만 사사들은 우리의 세상을 반영하는 만큼 우리와 친숙합니다. 성경은 사사시대에는 왕이 없고 지도자가 없었던 각기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시대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었던 때가 없었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의 왕되심을 버리고 스스로가 왕이 되어 판단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극심한 혼란을 겪는 것입니다. 창조시의 부여받은 성별까지도 나의 느낌과 감정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현 세대가 하나님의 왕되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나의 선택이며 죄의 뿌리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법을 버리고 나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사기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이며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삼고 주인으로 삼을 때에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갖는 자라고 말합니다.

각기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것은 유업의 손실을 가져옵니다. 유업(시 2:8)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며 소유는 자기가 가진 것을 말합니다. 사사기는 유업과 소유가 일치하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삿 1:16-36절에는 유업을 소유로 삼지 못한 실패의 9가지 예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처음 3 지파를 다루겠습니다(삿 1:16-28).

하나) 유다는 골짜기의 부족들이 철병거를 가지고 있으므로 5개의 블레셋 족속의 성읍 중 3개는 점령했고 2개는 철병거(장벽, 두려움)으로 인하여 그 땅을 정복하지 못합니다. 이에 반하는 믿음의 성공을 보여주는 여선지자, 드보라는 철병거 900승 앞에서 전쟁을 이깁니다. 구약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소바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전리품으로 말 1700마리를 얻지만 100마리만 남기고 모두 말의 발에 힘줄을 끊습니다(신 17:16, 말을 많이 두지 말라). 믿음의 걸음을 걸을 때만이 역할과 능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스마엘의 예는 그의 유업이 아닙니다. 믿음의 역할과 능력을 보십시오. 첫 번째, 믿음은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능력)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두 번째로 믿음은 생명력이 있어 점점 자라나서 구원을 보게 합니다. 히 11장에 노아는 오직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했으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가나안으로 향하였으며, 사라는 약속을 믿고 기다린 믿음으로 이삭을 잉태하였으며 이스라엘은 믿음으로 여리고를 점령했으며, 믿음의 선진들은 극심한 고난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믿음의 세 번째 역할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은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성례, 기도를 통하여 강화된다고 말합니다. 내 삶의 철병거 앞에서 승리의 가능성을 보지 않고(믿음없이) 굴복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다는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블레셋의 5개의 성읍 중에 2개의 성읍을 남겼는데, 이로 인하여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삿 15:11) 9개의 이스라엘의 지파는 가나안 백성을 조금씩 남겼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도를 지키나 안지키나 시험해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이루셨으나 말씀을 남겨주신 것은 은혜의 방편으로 우리 안에 남은 철병거를 제거하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둘), 므낫세가 쫓아 내지 못한 것은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힘이 없어서였지만 나중에 힘이 생기자 하나님 말씀을 잃어버리고(무시하고) 그들을 종 삼아서 같이 살아간 것은 유업의 상실은 말하며 죄를 상징합니다. 예수께서는 죄의 뿌리를 뽑기 위하여 세상과 싸우셨습니다. 죄를 완전 끊어버리라. 하지만, 죄가 주는 즐거움과 쾌락적인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것을 요구하시지만 사단은 교묘하게 섞인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주문합니다. 유업의 손실은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잃어버리고, 현실에 타협하고 안주하는 것으로부터 생깁니다.

셋), 요셉의 가문은 벧엘 지역으로 올라가라는 지시를 받고 정탐꾼을 파견합니다. 정탐군은 성에서 나오는 사람과 약조하고 그 사람으로부터 정보를 얻어 요셉 가문은 가나안의 성읍을 함락시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약조한대로 놓아 주었는데 그는 헷 족속에게 가서 루쓰라는 성읍(벧엘의 옛 이름)을 짓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는 유업의 손실입니다. 이에 비교되는 여호수아(수 2장)의 정탐꾼 라합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동화되어 유업의 손실이 없었지만, 요셉 족속은 이방인과 타협하여 유업의 손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어리석음과 게으름(naive함)으로 유업의 손실이 생겨나게 됩니다(삿 2:2 ‘그리함은 어찜이뇨’). 이를 빌미로 모든 지파는 실패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이방과 더불어 살며 이스라엘이 유업을 이루지 못하고 가나안의 우상을 숭배하는 자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삿 3:5-6). 우리가 여러 문제를 만날 때에 복음의 방법(겸손과 용서 그리고 희생과 사랑, 그리스도가 행하신 방법)대로 행하여야 유업의 손실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2021년 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Z 세대(1997-2002년 생)에 동생애자와 양성애자가 15.9퍼센트라는 것을 볼 때 이는 앞으로 격변하는 문화와 세계관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사회의 모든 어지러운 문제점은 기독교인이 세상 방식과 타협하고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 때문입니다. 이는 조금씩 조금씩 세상과 타협한 유업의 열매의 손실을 말합니다. 사사기는 사람의 실패의 다루는데, 그 실패를 극복하고자 하나님께서는 12명의 사사를 보내 주시지만, 진정한 유일한 사사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며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입니다. 이 세상의 영웅들은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이며,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순종을 하나님께 드린 분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분입니다. 예수님처럼 흠없고 순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기도보다 효과적일 것 같은 회의(會議)에 몰두하는 교역자들로부터 유업의 손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소견대로 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단 한 마리의 양도 잃어버리시지 않기 위하여 목자로서 순종하셨습니다. 성취는 우리의 결심과 헌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의 주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셨으며,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시고,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내가 환난을 이겼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가지로 그리스도의 안에서 거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두 손들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자가 되기를 축복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