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8일] 사사기강해(3) 여호와의 영에 감동된 사람, 옷니엘(1) (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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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에는 12명의 사사가 나옵니다. 기록된 양에 따라 대 사사 6명, 웃니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입다, 삼손과 그 밖의 6명의 소 사사로 나눕니다. 우선 사사라는 직분은 무엇인가 알아보겠습니다. 왕 대신에 세우신 사사는 독특한 직분의 명칭입니다. 사사라는 명칭이 주어진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으로, 심판(Judge)하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삿 11:27, ‘사사 여호와 하나님’).

삿 3:10 에는 사사가 동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사의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사사로서의 신학적인 의미는, 유일한 심판자, 구원자는 하나님이시고 12명의 사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나타내는) 통로로 부르셨다는 것 외에는 특권이 없습니다. 사사는 왕과 다릅니다. 그들은 사사의 직분을 자손에게 넘겨 줄 수도 없었으며, 군대를 소집할 수는 있었지만 백성들은 그 소집을 꼭 따라야할 의무는 없었습니다. 사사는 전쟁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간 자들이었습니다. 사사는 하나님의 통치함을 받은 파수꾼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소망을 나타냅니다. 신약에서 사사는 디아코니아로서의 예수님을 말하며(29번 나옵니다), 예수님은 섬기러 이 땅에 오셨으며. 바울은 2번 복음의 디아코너스(집사)라고 자신을 부릅니다. 이는 섬기는 자(집사, 시중드는 자들, 허드렛일을 하는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복음(교회)의 주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이 기본정신입니다. 복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높이려는 낮아진 자세를 말합니다. 목사 한 명에게 집중된 권위가 아닌 건강한 권위, 참된 감동과 권위로서 하나님의 왕되심과 그리스도가 주인되심을 보여주는 것이며(참된 직분론), 주인이 따로 계시므로 허드렛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모으는 자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사사의 직분(참된 권위와 리더십, 하나님을 잘 나타내는 통로)을 잘 섬기는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2 사사 중에 오직 옷니엘만은 부정적인 면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백성들과 동화되었으며 그들의 신을 섬기게 됩니다(3:6-7).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메소보다미아 왕‘구산 리사다임’에게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통치 아래 8년을 있게 됩니다(3:8).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고통을 부르짖으매 “여호와의 영에 감동된 사람”옷니엘을 사사로 세우셔서 그들을 구원하십니다(3:9-10). 지도를 보면 가나안 땅은 비옥한 초승달 모양으로, 북에는 메소포타미아와 남에는 애굽이라는 두 강한 나라를 두셨으며, 역사적으로 남북이 충돌하는 곳에 이스라엘을 두셔서 하나님만 의지하는 제사장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입니다. ‘사방으로 에워쌈’이라는 웃니엘의 대적은 지역적인 왕들이 아니고 메소포타미아 제국의 강력한 구산 리사다임(두 배로 악한 왕)입니다. 우리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라는 ‘대적’을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감당할 수 없는 가족 간의 관계의 위기, 건강의 문제, 비즈니스의 침몰, 배신과 경제적 압박, 신분 문제들을 만나게 됩니다. 본문은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웃니엘’이라고 말합니다. 이 명칭(갈렙과의 관계)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은혜와 비전은 다음 시간에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고(3:10) 하나님께서는 제국의 통치자를 그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의 승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성령의 임재입니다. 성경은 웃니엘이 갈렙의 다음 세대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사사 삼손의 힘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삼손은 머리카락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실인은 삭도를 대지 말고 술을 마시지 말고 시체를 만지지 말아야 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하게 배우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이 그를 감동하므로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가 있게 된 것입니다. 잘못된 가르침은 잘못된 결과를 가져옵니다. 힘의 근원은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사사들에게 임한 공통된 특징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하나님의 예외성입니다. 예훗은 왼손잡이로 자신의 지파 베냐민이 ‘오른손의 아들들’이라는 자부심과 전혀 상관없는 인물입니다. 베냐민 지파에서 왼손잡이 아들이 나왔으며, 소모는 막대기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삼갈은 일상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도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드보라는 여인이었으며 그 전쟁을 마무리한 여인은 야엘이며 그녀는 따듯한 접대와 베품으로 전쟁을 마무리합니다, 므낫세 지파 중에 가장 약한 기드온, 기생의 아들 입다, 이러한 자들이 어떻게 쓰임을 받았는가,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의 기적과 이사는 결과인데 그 원인은 성령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의하여 선한 열매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가시면 성령님이 오겠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디모데전서에서 집사와 장로의 직분과 본질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7 집사와 70 장로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복 받은 자입니다. 언약 백성으로 받은 복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최고의 심판은 신 31:17-18에서 말하는 하나님 얼굴을 바꾸신다(옮기신다, 숨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린 교회는 촛대를 옮겨 버린 에베소 교회(계 2:5)이며, 전통과 재산만 남은 현대의 교회, 이렇게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질그릇 같은 나를 직분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우리는 주님의 얼굴을 구하오니 주의 영으로 충만케 하옵소서’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영으로 그를 옷 입히신 것처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말년에 금 에봇을 만들어 성령의 옷을 벋어버리고 금 에봇을 입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그의 삶과 직분 모두를 잃어버린 자가 된 것입니다. 이는 복음의 다스리심을 마다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직분자들은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간구드립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시는 직분자들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