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빌립보서(1) 충만한 기쁨(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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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는 복음이 능력이 뚜렷이 구체적으로 보여지는 서신이며, 복음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말하는 서신입니다.

한국의 경제는 GDP가 3만 불이 넘었고, 세계 10대 경제 규모이며, 한국은 잘 살고 물가가 비싼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문화 컨텐츠를 세계적으로 열광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1960년대의 한국의 롤 모델은 베트남과 캄보디아였습니다. 보릿고개의 한국의 많은 아버지 세대가 잘 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외화벌이로 외국에 나가 일하였으며, 안으로는 부지런함과 진취적이며, 공부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부모님 세대의 결과로 한국은 초일류 국가가 되었으며, 이민생활도 큰 어려움이 없이 시작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풍족한 생활은 삶의 공허함과 분열과 갈등을 가져왔습니다. 2021년 9월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습니다. 2019년에 비해서 10-20대 자살률이 증가하였습니다. 자살이 죽음의 제일 원인이 되었습니다. 지독하게 공부한 저희 세대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학교에서 주중에 15시간씩 공부하였으며, 자녀들을 주일날 하루 쉬게 하기 위하여 학생들은 교회를 등지고 부모님들만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산율은 마이너스가 되어 인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서울대의 연구에 의하면 2년에 대전 인구(150만)가 없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10년간 225조 원에 세금을 쏟아 부었는데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경쟁이 무섭고 인생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 인간의 삶이 행복하지 않은 세대가 지금의 젊은이들이며, 오래 사는 첫 세대로 모든 것을 상실한 채로 길게 살기 때문에 노년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암울하고 우울한 기대 수명이 83세인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소외되고 힘겹고 외로운 세대이며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는 부모님 세대입니다.

삶의 열매는 영광스러운 과제이기도 하지만 고통스러운 과거를 들추는 역할도 합니다. 코로나가 던져준 것은 소외와 고립입니다. 쏟아지는 정보에 옥석을 가리지 못하고 열심히 살다 보니 기쁨이 없는 삶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매일 창조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셨으며, 사람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가야 할 곳을 에덴동산(기쁨)이라고 지으셨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시작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안식으로 멀어진 인간들을 회복시키시고자 오신 예수님은 기쁨이 충만한 분으로 에덴의 회복을 기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 사역으로 결혼식에서 천국 잔치를 여셨는데, 결핍과 부족의 상태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셔서 끝나게 된 결혼식에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기쁨에 넘치는 나라를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누룩처럼 번성하는 천국이며, 동전과 보화같이 값진 것이라고 그 찾은 기쁨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주신 제자들을 향한 마지막 설교(요 15:11)와 마지막 기도(요 17:13)는 ‘지금 내 안에 있는 충만한 기쁨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충만하게 하시려고 십자가로 나아간다’고 말씀하시고 기도 드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는 것은 참된 기쁨의 회복입니다. 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참된 기쁨은 아침부터 시작하여 온종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입니다. 바울이 3차전도 여행을 마치고, 차가운 옥에서 쓴 서신입니다. 그런 이 빌립보서에 기쁨이라는 단어 17번 나옵니다. 기쁨이 넘치는 이 서신의 4:11-12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나는 기쁨 안에 들어 있습니다’고 그 비결을 말씀합니다. 기쁨을 빼앗아 가는 것은 궁핍함과 어려움이며, 부족함이며 관계의 상함이며 염려와 근심입니다. 이에 대하여 자족함(4장), 관계의 회복(2장,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감사로 하나님께 아뢰라’(4장) 고 말씀하며 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마귀는 성공도, 명예도, 부유함도 줄 수 있지만 기쁨은 주지 못하고 7갈래의 길로 쫓겨 나갑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누룩과 같이 그 기쁨이 퍼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갈등과 어려움의 문제는 외부의 상황이 나의 내면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내면의 견고함(기쁨)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참된 비결은 기쁨이며 세상이 알지 못하는 역설적인 비결입니다

첫 번째, 충만한 샘솟는 기쁨의 비결은 무엇인가 이 대답은 1장 1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시작하는 바울의 서신중에 유일하게‘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이렇게 시작하는 이 서신 안에 종의 신학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는 삶 안에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사망과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예수님께서 영 단번의 제사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을 위해 구원(자유)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얻는 자유는 갈라디아서의 (무엇을 위한) 자유(기쁨)를 누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기쁨은 4단계로 되었는데, 1단계는 죄의 종된 상태이며 2 단계는 죄의 종에서의 분리이며(구원받은 백성의 은총), 3 단계는 종됨을 위한 자유, 4 단계는 그리스도의 종됨 안에서 참된 자유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성화의 과정은 그리스도의 종됨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는 것이며 기쁨을 말합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살았기 때문에 기뻐하였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죄의 무거운 멍에를 벗고 주님이 주시는 가벼운 멍에를 지라는 것입니다(마 11:28-30). 종은 온전히 주인에게 속하여 주인의 의도대로(통제 아래) 살아가는 사람이며, 그리스도 안에 속한 충성된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 사 42장은 내가 기뻐하는 자, 내가 택한 자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선언과 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고후 4:5, 첫째,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종된 것을 전파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례 요한같이 없어지는 삶이 아니라 우리를 나타내고자 합니다. 존 칼빈의 유언은 나의 무덤에는 아무 표시도 하지 말아라 입니다. 그리스도의 종된 삶으로 자신을 감추고 그리스도만 높이는 자가 되기 위하여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주되심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2세기 디오그네투스라는 로마 관헌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리스도인은 황제를 주라고 하지 않고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는 제 3의 종족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오직 자신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너희의 종된 것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빌립보 교인들에게 종이라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진실된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으로 섬기기 시작할 때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내가 종으로 살아가는 것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알게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기쁨을 누리고 은혜를 알게 하시고 예수의 주되심과 나의 종됨을 선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