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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요한복음(19) 향유 냄새가 가득하더라 (요 12:1-8)

한길교회 http://churchtheway.com/home

오늘로 요한복음 전반부를 마칩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친숙한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사건입니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헌신과 사랑의 향기입니다(‘향기가 온 집에 가득하였더라’).

‘유월절 엿새 전’에는 인류 역사 가운데 앞으로 올 가장 중요한 한 주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인류의 구원을 이루실 가장 의미있는 한주일의 시작입니다. 마리아의 향유 사건은 일년치 노동자의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의 향유를 예수님께 드린 것입니다. 고전에는 여자의 긴머리는 자기의 영광이라라고 말합니다. 머리를 가지고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린 사건은 높은 가치를 가지고 가장 낮은 발을 영광스럽게 한 예배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그 여인을 기억하리라(마 26:13)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복음이 떨어진 곳에는 ‘주님의 향기가 가득하고’ 주님을 향한 충분한 경배가 드려진다는 말씀입니다. 2000년의 기독교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을 깨뜨려 주님을 향한 무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영광받으실 분입니다.

오늘은 본문은 우리에게 두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그리고 내가 깨드릴 향유는 무엇인가 입니다. 마리아는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사로가 부활했던 사건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고 부활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복음에 은혜가 부어지니 가장 귀한 것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는 풍성한 사랑의 감정입니다. 신령한 지식과 거룩한 감정(조나던 에드워드)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복음도 이와같이 눈이 밝아질 뿐 아니라 마음을 뜨거워지게 합니다. 복음이 역사하는 모든 곳마다 강력하고 거룩한 마음이 뜨겁게 기쁨(사랑, 긍휼과 헌신)으로 다가옵니다. 지난 11장은 나사로의 부활사건으로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십니다(11:35). 눈물을 흘리신 이유는‘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입니다(11:33) 이는 예수님의 ‘긍휼’로 죄인을 진노 가운데 두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심입니다. 긍휼은 여인의 자궁(태)에서 기인합니다. 그만큼 사랑으로 가득찬 것입니다(11:36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더욱 놀라운 것은 기적을 넘어 주님께서 긍휼의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이 가장 짧은 구절이 가장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기적과 체험이 거룩한 감정 안에서 승화되고 주님의 긍휼하신 마음으로 용납받아 사역하여야 합니다.

무엇으로 주를 섬기시겠습니까, 능력 너머 거룩한 감정이 나에게도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곡하는 부녀를 사서 나를 위하여 곡하게 하라고(렘 9:17-22) 말씀합니다. 굳어진 심령은 죄에 대한 부끄러운(애통한) 마음과 하나님의 대한 지식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 제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한 예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묻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 속에 기쁨이 메말라 있습니다. 모조품 조화(종교활동)에 무슨 향기가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향기가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헌신과 사역은 무겁고 메말라 갑니다.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십시요 우리 안에 불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법은 사랑을 식게 합니다(마 24:11-12). 불법으로 가득찬 가롯 유다는 냉랭한 자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 향유를 돈의 가치로 환산하는 자입니다. 그러한 그는 노예의 가치,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버립니다. 마리아의 300 데나리온의 가치의 향료와 비교해 보십시요 그는 무감각한 현실주의자이며 도둑입니다(12:4-6). 마땅히 하나님께 드릴 것을 편취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 관계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에스라 8장은 말합니다. 바벨론을 떠나지 못하는 자들이 드린 예물의 총량을 계수하고, 계수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또 계수하여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스 8:33-34). 예물은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온전하게 드리고 온전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얼마나 누수됨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온전히 사용될 것인가 입니다. 이것이 달란트 비유입니다. 교회에서 불법이 횡행하고 예물(사랑)이 누수될 때에 냉냉한 신자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내 맘에 가롯 유다는 없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은 순전하고 깨끗함에 나오는 향기이며 풍성한 감격과 은총입니다.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하신 질문은 최고의 사랑인가 즉 순전한 마음(향유)을 가지고 있는가 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순전한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마리아를 칭찬하시는 이유는 바로 때가 그때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헌신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이때에) 온전하고 순결한 몸(삶)을 전제로 올려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