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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눅 2:8-14)

한길교회 http://churchtheway.com/home

샬롬(평강), 누구는 ‘코로나는 하나님의 흔드심이다’라고 말합니다. 삶의 익숙함을 흔들어 본질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이 코로나의 상황을 통하여 복음의 본질(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첫 마음으로 새긴 것은 본질을 의미합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첫 성탄예배를 설펴보고자 합니다. 첫 예배는 좋은 소식이 전파됨일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드려진 천상 예배의 현장입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으로 다윗 동네에 구주 예수님이 오신 것은 구약 전체를 통해 전해진 복음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배의 현장을 보십시오. 우선 장소입니다. 천상의 예배가 거친 베들레헴의 들판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오늘도 예배를 통하여 복음이, 목자들이 몸으로 양떼를 지키는, 거친 들판 즉 선교지에서 울려 퍼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교회의 터전에서, 그리고 지금은 일상의 가정의 터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들입니다. 둘째로, 복음을 증거하고 전하는 자는 목자였습니다. 목자들은 비천한 자로 분류됩니다. 이들은 부정하다 여긴 배설물을 만지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거짓말하는 자들(삯꾼 목자)이라고 여겨지는 자들입니다. 목자의 증언은 믿을 수 있는 법적 권위가 없었습니다. 아기 예수가 오심은 권위 있는 대제사장이 전하고 보증하는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이 목동들이 첫 번째 예배자들이며 전도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천한 여성의 지위를 가진 과부 안나에게 계시하셨고, 목동과 같은 세리 레위 마태는 복음을 전하며, 그리고 천하다고 여겨진 10명의 나병환자 중에 더욱 천한 사마리아인 환자만이 복음을 전합니다. 이는 복음의 일관성(통일성)을 말합니다. 왜 비천한 자 중의 비천한 자였을까, 왜 목동이였을까, 이 질문 끝은 ‘왜 나인가’를 가리켜야 합니다. 주님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자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천한 나를 삼아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목동들이 아기 예수를 찾은 것은 구유가 표적이 되어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왕궁, 여관방에, 조금이라도 나은 장소에 오셨더라면 목동들이 아기 예수를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구유(가장 미천한 자리)는 목동들에게 표적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구유는 표적이 되어 누구든지 내게 오라고 열린 문으로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구주가 나셨으니 이는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입니다”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백성들에게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시 29:11). ‘영광의 하나님’이란 표현은 성경의 두 군데(시 29:3과 행 7:2)있습니다. 인간은 영광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합당하지 않은 복입니다. 투기, 시기, 비교는 헛된 영광입니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하심이라’(사 43:21, 창조의 목적, 존재의 목적이며 의미입니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합당한 예배는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 복은 안식과 평강입니다. 가장 낮은 구유가 표적이 되어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상관없이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평강의 복은 낮은 곳에 있습니다. 세상의 명예를 찾는 자들이 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광을 누릴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다는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바른 예배자로 서시기 바랍니다.

아기 예수께서 오신 소식은 목동들에게 기쁨과 평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아기예수 탄생소식에 시기와 노여움이 일어납니다. 이는 헛된 영광입니다. 비록 자신에 실망하여 그 실망이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를지라도 평강의 복을 누리도록 하십시오. 주님께는 영광을 드리고 우리에게는 낮은 자의 평강이 있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