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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낙심의 늪에 빠져 갈 때 (왕상 19: 1-8)

한길교회 http://churchtheway.com/home

낙심의 경험, 정도가 심하면 절망을 하고 심지어는 스스로 죽음으로 무너지기도 합니다. WHO의 통계에 의하면, 30초당 한 명씩 일 년에 80만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스토리입니다. 18장에서 갈멜산에서 이방의 선지자들을 상대로 큰 성공을 거두었던 엘리야는 고작 이세벨의 협박편지를 보고, 일어나, 도망하였습니다(북 이스라엘에서 남 유다의 최남단, 브엘세바로 또 거기서 광야로 하루 길쯤 들어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합니다).

엘리야가 말하는 ‘넉넉하오니 내 생명을 거두소서’(4절 하) 이는 실망하여 이제 되었사오니, 죽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에 오히려 겁을 먹은 사람은 이세벨이었습니다. 엘리야를 조용히 떠나보내기 위하여 협박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눈에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세상 권세를 가진 이세벨의 협박만이 눈에 보인 것(상황)입니다. 기대가 크면 클수록, 상황이 그 기대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 기대는 절망감으로 바뀝니다.

역사의 주인공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 하나님은 엘리야처럼 절망하고 계실까, 하나님은 엘리야의 죽겠다는 마음을 받지 않으시고(하나님의 때가 아니다) 엘리야에게 다시 은혜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잠’(시 122:3)을 주십니다(5-6절). 여호와의 천사(성육신하시기 전의 하나님의 2위)가 찾아와서 엘리야를 어루만지고(5, 7절) 음식을 먹여 주시고(하나님의 긴급조치), 하나님의 산(하나님의 임재), 호렙산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 굴(출 33:21, 모세, ‘반석 틈’)로 인도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신약의 변화산 상의 모세(율법의 대표)와 엘리야(선지자의 대표)를 기대하게 합니다(모든 말씀의 근거). 또한 모세를 만났던 그 자리에서, 바람과 지진과 불이 심판이 있었던 것(하나님이 임재하심)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미세한 음성가운데 나타나십니다. 신약의 엘리야인 세례요한은 불(심판)과 성령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말씀합니다만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의 질문에 답하십니다(눅 7:22 이하). 이는 메시야가 오셔서 하실 일이며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말합니다.

19장 전체에서 깊은 실망감에 빠져 있던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의 말씀을 제시하십니다. 실망감으로 위대한 엘리야가 무너졌지만, 하나님의 메시지는 낙망과 절망이라는 ‘현실’과 그‘해결책’ 두 가지를 모두 보여줍니다. 신약에서는, 베드로는‘불시험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으로 즐거워하라’(벧전 4:12-13).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 16;33),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성공의 정점에서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줄로 생각하지 말라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13)고 말씀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고난과 절망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 주제는 절망과 낙심이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적으로 보내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으켜 주시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상황을 전개하십니다. 19장의 엘리야의 정확한 심정(19:14)은 선지자다운 선지자는 나밖에 없다는 자존감 자신감입니다(출 33장), 하지만 승리한 엘리야는 그만 편지 한 장으로 무기력하고 무가치한 한 인간으로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로 엘리야에게 광야와 호렙산에서 베푸셨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떡과 생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엘리야는 불완전한 구세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머리를 쳐부수신 주님을 만나십시오. 오직 유일한 길을 통하여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주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