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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9일] 요한복음 (17) 그의 손의 양이라 (요 10:1-10) 박찬섭목사

한길교회 http://churchtheway.com/home

올해, 팬더믹이 시작하고 중반쯤 지나났을 때,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소식, 매스컴의 소식에 따라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면서,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라는 말씀을 생각하고 예수님께 집중하기를 원하며 요한복음을 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가 풍랑의 바다를 걸었던 것은 예수님께 의지하며 걸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가는 목회 비전을 여러분들과 나누기를 원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합니다.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게 하시고 풍성한 꼴로 먹이시고 생명을 주시고 유지하게 하십니다. 성경은 우리를 양에 비유합니다(우리의 정체성). 실제로 양은 깨끗하지 않습니다, 양은 무엇 하나 자신을 방어하는 기작의 없습니다. 더욱이 양은 미련합니다. 한 마리가 가면 따라갑니다. 미련하고 고집 센 양의 습성은 죄의 대한 습성(사 53장)을 말합니다. 이러한 양의 습성 때문에 양에게는 선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양의 생명의 보존, 풍성함이 목자에 철저하게 의탁되어 있으며 양으로 비유되는 우리가 목자에 의탁하는 것이 우리 추구하는 삶의 전부입니다.

본문은 예수께서 선한 목자가 되셔서 양의 문(구원의 문)을 여시고 각각의 이름을 불러 구원하십니다, 양의 문을 통하지 않고 양의 우리에 출입하는 자는 절도요, 강도입니다. 세상의 시류와 다른 종교들이 왜 강도라고 일컬어지는가, 어떤 것도 우리의 구원을 대신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실 만한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내 영혼을 빼앗아 가는 강도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양을 부르실 때 각각의 이름을 부르십니다(요 10:3). 예수님께서 각자의 이름을 알고 부른다는 것(요 10:14)은 개개 체를 구원하시며 그 개체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 부르며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시는 것입니다. 이름은 정체성이며 하나님의 기대를 담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아브라함(모든 민족의 아버지), 야곱-이스라엘(이스라엘의 아버지), 열정의 베드로 –게바(흔들리지 않는 반석) 이렇게 현실과 상황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름을 부르십니다.

여러분의 영적 이름은 무엇입니까 저는 ‘설교로 교회가 시작된’ 스데반이라고 불리기 바랍니다(행 7장, 참고, 아 6:10).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이름을 지으시고 부르시는 것은 여호와의 열심으로 우리를 빚어 가시는 것입니다. 양들은 주님의 물가와 풍성한 꼴로 인도하심에 따라갑니다(요 10:4).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성령님께 의탁하시기를 바랍니다(요 10:9-10, 들어올 때에 주시는 구원의 문뿐만 아니라 나갈 때 주시는 풍성한 삶,

신앙의 여정에서, 믿음의 삶에서 공허함, 부족함, 결핍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근거 위에 잘못된 목표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목초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안식으로 누릴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목초지가 아니라 안식과 쉼입니다. 푸른 초장과 시내가 안식이 아닙니다. 죄로 인하여 끊임없이 목마름과 갈급이 계속됩니다. 주님(목자)이 인도하시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원수의 목전에서도 참 안식을 누리게 되며 목마름이 끊임없이 닥쳐와서 우리는 쉼과 안식에 있게 됩니다. 안식은 상황과 관계없는 주님과의 관계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거하든지 선한 목자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리도록 인도하십니다(시편 23편 인도하시는 목적).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자리를 구하여야 합니다. 그의 거룩하심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마땅히 무엇을 구하여야 할지 몰라도 아름다운 기도로 올린 바 되어 아버지 영광을 간구해야 합니다(요 17:10).

요 10:16은 모든 시대의 우리에게 밖에 있는 양들을 인도하게 하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목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목자는 우리의 또 다른 정체성입니다. 베드로는 양이자 목자입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양무리의 본이 되라, 목자장이 오실 때까지 양무리의 본이 되어 양을 치라고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선한 목자에게는 참 목자의 흔적이 있습니다. 계 5장에서 양을 묘사할 때에 ‘일찍이 죽임을 받은 것 같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참 목자의 흔적입니다. 상처 없는 목자(목양)가 있을 수 있을까(참고, 겔 34:3-6, 포학으로 다스렸도다) 상처 없이 참 목자의 임무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양과 목자는 서로를 알아봅니다(요 10:27). 목양은 상처 받지 않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한사람을, 한사람을 마음에 품고 상처를 치유하며 참 목자의 위치에서 우리 밖에 있는 양들에게 생명을 전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