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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8일] 요한복음 (16)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요 9:1-12)

한길교회 http://churchtheway.com/home

“풍성한 감사와 회복이 있는 추수 감사의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본문은 시각장애를 가졌던 사람을 회복시키는 사건이다. 그도 부모가 있었으나 날 때부터 맹인된 그를 버렸고 그를 부인하는 것(9:23)을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다가 어둠에 갇혀있는 그를 보셨다. 제자가 그 맹인에 대해 질문하는 그 질문(9:2) 안에서 그 당시의 세계관(사회적 통념)이 담겨 있다. ‘고난, 질병은 죄의 대가인가.’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9:3). 그리고 그 맹인에게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의 원인이 아니라 목적을 말씀하신다. 존귀한 고통이 있다. 무엇을 위해 이 시간이 예비되었을까에 대한 대답은 장차 올 영광에 초점이 맞추어진다는 것이다. 때가 이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함께 하여야 하리라. 고귀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밝은 일이 드러났다. 아픔 안에 소명과 부르심이 있다. 아픔 안에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은혜가 있게 되는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듯이 예수님께서는 맹인의 눈을 만져주셨습니다. 몸에 가진 상처를 주님께서 직접 만져주심으로 마음에 받은 상처를 고쳐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순종의 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는 장소는 주님께서 정하십니다. 가야 하는 곳에 가야하고 머물라 하는 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아마도 맹인은 예루살렘의 번화한 길거리에서 구걸을 했을 것인데 앞을 못 보는 상태에서 예루살렘의 가장 낮은 곳, 먼 곳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약속을 받은 자들은 낮은 곳에 거합니다. 그의 눈이 밝아짐으로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을 것이며 그는 예루살렘의 당국자들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진술하는 담대함으로 사실대로 증언합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증언하는 것은 자유함의 신앙고백입니다. 그 증언을 들은 예루살렘의 당국자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했다는 죄목을 씌웁니다. 그리고 그 죄를 맹인에게도 물을 기세입니다. 진술은 자신의 유익에 의하여 변질될 수 있습니다(예, 요 5장, 침상을 들었다는 죄목에 대하여. 두려움에 예수님을 고발하는 사건으로 변질됩니다). 하지만 맹인의 진술은 명백하고 담백합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중심성에 갇혀서 사실을 사실대로 진술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러나 맹인은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을 너희는 모른다고 말합니까’ 라고 반문합니다. 9장의 결론은 40절에 ‘우리도 맹인인가’입니다. 눈뜬 사람이 소경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아이러니(반전)입니다. 이 반전을 우리가 성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예가, 스데반의 변명입니다(행 7장, 7:47-53). 스데반의 죄목은 성전 모독인데 그가 말한 것은 성전을 봉헌한 솔로몬의 기도의 일부입니다(왕상 8:12 이하) 그리고 선지서의 말씀입니다(사 66장). 우리가 참된 자유함을 얻어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생활에 적용하고 전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왜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얻을 수 없을지 몰라도 결과는 얻을 수 있습니다. 실로암 못에 눈을 씻고 아집과 독선을 내려놓고 참된 자유함을 얻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참된 말씀(복음)을 선포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