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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 요한복음 (13) 무리는 흩으시고, 제자는 풍랑속으로 (요 6:65-69)

한길교회 http://churchtheway.com/home

요한복음은 AD 90년 경에 요한이 기록한 복음서로 다른 세 복음서에서 빠진 내용을 추가하였다(요한복음의 필요성, 요한복음의 여섯가지 표적). 그리고 세 복음서의 이사와 기적을 주석과 해석하였다(대표적인 예는 요 6장 오병이어의 의미의 해석이다). 참된 의미는 요 6:14-16에서 말씀하고 있다. 오병이어의 사건을 체험하고 열광하며 칭송하는 (1) 사람들을 흩으셨고 (2) 제자들을 배를 태워 갈릴리 바다로 이끄셔서 폭풍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이는 어떤 장소가 우리 영혼에게 더 위험할까, 폭풍우의 현장일까, 성공에 가득찬 세상의 현장일까 라고 묻는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험한 장소(칭송과 열광의 장소)로부터 안전한 장소(두려움과 걱정의 폭풍우의 장소)로 옮기셨다. 이는 아이러니이며 영적인 문제(영력)이다. (3)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홀로 산으로 가셨다. 제자도의 핵심은 홀로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삶에 있다. 우리들의 문제는 삶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이 끊어진 것이다. 기도 중에 하나님의 평강을 만나면 우리의 삶은 회복된다.

요한복음은 오병이어 사건, 풍랑사건, 오병이어의 해설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병이어 신학적인 의미는 유월절을 의미한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문설주의 어린 양의 피, 광야의 만나사건을 의미한다. 그리고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바다에 길을 내셨다. 참된 구원자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도래하였다는 것을 말하는데, 막 6:48에 함축되고 절제된 말씀은, 역경의 밤에 방향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힘겹게(괴로이) 노를 젓는 제자들에게 다가가신 예수님께서 바다 위에 길을 내사 그들을 구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 어려운 상태에서 계획이 무산되고 세상을 상징하는 바다에서 발버둥치는, 영적 상태를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하여진 제자들을(막 6:51-52) 그들의 마음(이적과 기사에 가득찬)을 깨우치게 하시기 위하여 풍랑 속으로 보내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계시다는 말씀을 듣고 찾아온 자들에게 주신 말씀은 나를 찾아온 동기가 나를 알아서가 아니고 너희들이 배부름을 위한 것이다(요 6:26). 예수님께서는 ‘에고 에미미’(나는 누구이다)를 말씀하심으로 만복(滿腹)을 위해 찾아오는 무리들에게 영생의 떡과 음료을 말씀하시며 십자가로 가실 것(복음)을 말씀하신다(요 6:53-55, 그리스도의 대속을 말하는 성만찬) 이를 이해하지 못한 많은 무리들이 떠나간다(요 6:62-66, 걸림이 되느냐)

우리가 함께 모이는 것은 에클레시아의 교회이며 서로 흩어져 있을 때에는 디아스포라입니다. 이 팬더믹의 시기에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진리의 핵심인 십자가의 도(영생의 복)를 말씀하실 때에 그들은 떠나갔습니다. 내면의 동기가 자기를 위한 떡에 불과하다면 이는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쫓는 자기 유익, 자기 만족을 원하는 자들이 ‘무리들’입니다. 비록 이러한 무리들이 모인다 하더라도 열광과 찬양이 있읍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순종이 없습니다. 얼마나 열광하던지 찬송하던지 예수님께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깨우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무리들인지, 제자들인지 자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을 적극적으로 흩으시고 계십니다.

이 7개월의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겼습니다. ‘부흥’입니다. 다시 모이는 자들은 헌신의 깊이를 가진 분들이기를 바랍니다. 핍박과 환란 중에도 말씀에 순종하며 제자도를 따르는 자들은 교회의 부흥에 동참할 것입니다. 참된 부흥을 이루면서 제자들과 함께 참된 목회를 해 나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때의 선교의 일군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너희도 가려는냐’이 질문은 베드로의 부인을 상징합니다. 베드로는 긍정적으로 예수님을 찬양한(요 6:68-69) 후에 곧 예수님을 세번 부인합니다. 이 부인은 연약함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기에 부족합니다.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주님께로 나아가겠습니까, 은혜로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이것이 성도의 견인(끌어주심)입니다. 두려운 마음은 우리를 실족시킵니다. 물에 빠져가는 우리를 성경 말씀 그대로, 즉시 은혜로 견인하십니다. 주님의 은혜에 붙잡힌 바 되시기를 바랍니다. 순종의 역군이 되시고 제자들의 삶에 함께 계시는 주님을 만나 그리스도의 참된 청지기가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