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맞는 옷

Author
한길지기
Date
2018-01-29 12:59
Views
611
주일 아침마다 옷을 입는 게 힘이 듭니다. 전에는 잘 맞았던 와이셔츠였는데 특히 목이 아주 약간 조여서 불편합니다. 저는 와이셔츠를 빨아서 줄었다고 주장하고 제 아내는 목에 살이 올라서 그렇다고 주장합니다. 제가 목이 너무 조이는 것 같다고 하면 살을 빼라고만 합니다. 제 아내가 전에는 안 맞던 옷이 이제는 맞는다고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옷에다 몸을 맞추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것입니다.

옷은 일단은 입어서 편해야 하고 동시에 맵시가 나야 합니다. 크고 헐렁한 옷을 입으면 편하기는 한데 맵시가 나지 않습니다. 꼭 맞는 옷을 입으면 맵시는 나는데(양복도 slim fit을 입으면 저도 배가 쏙 들어간 것 같고, 허리가 잘록해 보입니다) 정말 불평합니다. 그래서 저도 옷이 여러 벌이 되어도 항상 입는 옷만 입게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나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모임은 참 좋은 사람들의 모임인데도 뭔지 모르게 불편합니다. 유익하고 실속있는 모임이기는 하지만 그 자리가 어색합니다.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지만 30분 대화를 이어가기가 어색할 만큼 불편한 만남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기보다는 말 한마디라도 조심을 해야 할 것 같고, 머릿속으로 항상 할 말을 준비해야 하는 만남입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편안한 자리는 그리 대단한 자리가 아니더라도 왠지 몸에 잘 맞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직장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높은 연봉에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리라고 해도 개인의 능력과 성향에 따라서 그 자리가 불편할 수 있습니다. 이건 그 자리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결국은 개인적인 취향과 성향의 문제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과 관심에 따라 가장 잘 맞는 곳이 있고 잘 맞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제 아내가 말하듯이 어느 자리에 있든지 자신을 자리에 맞추면 된다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 때로는 그 노력이 삶의 즐거움을 빼앗아가기도 합니다.

교회도 그럴 것 같습니다.
교회마다 색깔이 다르고, 지도자들이나 구성원의 성격과 취향이 달라서 좋은 교회인데도 잘 맞지 않는 교회가 있고,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왠지 잘 맞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몸에 잘 맞으면서 맵시가 나는 옷을 찾는 것처럼 교회를 찾기도 합니다. 맞추며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자기 입맛에 맞는 대로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라서 맞추어 살아야 할 책임을 소홀히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찾을 수만 있다면 몸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