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시나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는 방학 때마다 일기 숙제가 있었습니다. 날마다 일기를 적도록 되어 있는데, 정신없이 놀며 지내다가 늘 개학을 며칠 앞두고 밀린 일기를 쓰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후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않다가, 본격적으로 목회를 시작하며 일기를 다시 적기 시작했습니다. 일기를 적으며,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돌아봅니다. 진실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의 솔직한 감정과 실망, 바람과 고뇌를 적어갑니다. 나의 내면의 부산함을 적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기는 기도가 됩니다. 일기 기도는 중언부언 하지 않습니다. 글로 기도를 드리니 감정은 절제되어 있으나 깊이는 더해집니다. 일상의 일들로 시작한 일기는 어느새 시편의 기도를 인용하며 끝을 맺게 됩니다.

일기는 나 자신과 활발한 대화를 이끌어 냅니다. 내가 ‘이상(理想)하고 있는 나’와 ‘현실속에 방황하고 있는 나’가 글로 만나 대화를 나눕니다. 이러한 작업을 심리상담에서는 “객관화 보기”라고 한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갈등 속에서 표류하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며, 모든 상황을 재구성해보는 시간입니다. 보통 바둑에도 훈수 두는 사람이 더 길을 잘 보듯, 상황에서 빠져나와서 나자신을 보니 나아갈 길과 지혜가 더 잘 보이게 됩니다. 객관화 하여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일기는 성경 말씀으로 채워집니다. 나와 나 자신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나와 성령님의 대화가 되고,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을 찾아 한절 한절 적다보면, 그 말씀이 내 발의 등과 내 길의 빛이 됩니다.

또한 일기를 쓰며 내면 세계의 질서를 다시금 세워갑니다. 삶의 분주함 가운데, 그날 그날 연달아 닥치는 일에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반응하며 쫓아가다 어느덧 돌아보면 내면 세계의 질서는 무너져 있고, 그 혼란가운데 영적, 정서적, 지적, 신체적 고갈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일기를 쓰며 언제나 나와 함께하신다는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고요히 그분 앞에서 내면의 질서와 우선순위를 세워갑니다. 일기를 쓰며 잃어버린 내면의 평안함을 회복합니다.

일기를 쓰는 것은 매일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기록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적극적으로 내 삶에 개입하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신지를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일기를 쓰며 내가 의지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날마다 깨닫습니다. 9월이 되어 정신없이 분주한 성도님들이 많으실텐데, 잠시 멈추어 내면의 질서를 세우는 일기쓰기를 시작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