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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단 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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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브갓네살은 2장의 감동과 감격과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와 지혜를 보았음에도 자신의 삶의 신을 바꾸지 아니하고 금신상을 세웁니다. 저는 느브갓네살을 묵상함으로 신앙상태를 점검하게 됩니다. 회심은 외적 변화가 아니고 내적 변화입니다. 예배의 모든 아름다움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빛으로 비춰주실 때 우리의 속사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는 영혼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은택입니다.

금의 나라는 영원할 것이라는 관점에서 그는 금신상을 세웁니다. 길이는 30미터이고 폭은 3미터의 위용을 자랑하며 햇빛이 비추일 때마다 두려움과 위엄으로 사람들을 눌렀습니다. 낙성식에 참석자들의 면면과 모든 악기는 웅장함은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는데(3:2), 그 옆에 맹렬히 타는 풀무불이 있었습니다. 이는 신상에 참여해야 하는 것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며, 어느 누가 신상에 절하는 것을 거절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상숭배의 본질은 신을 형상화하여 신을 통제하고 자신의 삶과 나라를 통치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이는 모든 시대를 통하여 두려움과 종교성으로 결박하여 복종하게 하는 것으로 마음을 결박하여 공허하고 허탈하고 경쟁하며 살아가게 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상의 풀무불의 두려움이 세 사람을 결박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러한 결박에 대항한 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만 섬기기로한 세 사람을 세속의 문화와 두려움으로 결박하지 못하였고 그들이 가진 양심의 무한한 자유는 하나님께만 복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느브갓네살은 그들을 타일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듣지 아니하자 무서운 협박으로 바뀝니다. 이에 대한 세 사람의 말은 아주 담대함으로 즉각적이며 선명하였습니다(3:15-16). 하나님께만 순복하는 자는 신념과 신앙에 매이지 않고 믿음을 가집니다. 히 11:34는 ‘그들은 믿음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게도 하였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믿음의 신앙고백(3:17-18)은 ‘풀무불과 왕의 손에서 건져내실 것이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만 섬길 것이라’입니다. 이 믿음의 고백이 모든 결박에서 풀어내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믿음의 대상(믿음의 목적어)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상황에 대한 확신으로, 믿고 기도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삶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확신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되어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신앙고백에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십자가에서 확증된 그 사랑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십자가에서 확증된 사랑은 다시 확인할 이유가 없습니다. 믿음의 목적어는 항상 지혜와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의 권능, 하늘이 땅보다 높다는 지혜, 한 번도 어긋남이 없다는 통치를 믿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자에게는 영혼의 결박이 없습니다.

탕자의 비유는, 첫째 탕자는 선한 행동으로 나의 몫도 있다고 하는 자이며, 둘째 탕자는 아버지를 압박하고 아버지로부터 자기 몫을 취한 자입니다. 첫째는 종교적 소비주의자이며 둘째는 종교적 행동주의자입니다. 그들은 다른 것 같아도 이란성 쌍둥이입니다. 둘 다 주시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주시는 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에 대한 아버지의 말씀은 ‘너와 항상 함께 있지 않느냐’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정의이며 복음의 본질입니다. 신앙의 가치는 For에 있지 않고 With에 있습니다. 가장 우선적인 가치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하나님과 같이 하고자 하는‘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이는 위대한 반전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단 3:24-25, 풀부불 안에는 네 사람이 있었고 넷째 사람은 신들의 아들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입니다.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비전의 현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하여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보호되어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이 고통의 끝은 어디일까, 하지만 우리의 믿음은, 주시는 분에 있음으로 인하여,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벗어나‘오늘 하루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살게 하시옵소서. 그 안에서 만족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