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 홑이불을 두른 청년: 마가 (막 14: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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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는 마지막 일주일을 거의 절반 분량으로 할애하고 있습니다.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마지막 일주일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군중이 호산나를 연호하며 예수님을 따라 갔지만 그들은 곧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으라고 소리 지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가 죽음으로 바라바 예수가 살아난 사건이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 만찬이 있으며 세족식이 있습니다. 그 중의 백미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입니다. 십자가 달리신 예수님과 두 강도 이야기는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편은 구원을, 다른 한편은 심판을 이야기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한 오른편 강도의 구원을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가장 약하고 척박한 조건의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깨달은 것이며 그의 말(‘진리를 깨닫지 못하느냐’)에서 복음의 진수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가 나를 위한 십자가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홑이불을 두른 청년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 청년을 “마가”라고 보는데 이는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에 따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12제자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고 홑이불의 두른 모습으로 따라가던 마가도 홑이불을 버리고 부끄러운(예수님이 부끄러운 모습을 상징함) 벗은 모습으로 도망합니다. 마가는 마가복음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아니합니다. 요한복음에도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의 ‘사랑하시는 자’ 요한이 자기 이름을 넣지 않은 것은 자기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자리요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마가도 예수를 버린 자들의 하나이었으며 이는 우리를 십자가로 들어오게 하는 사건입니다. 십자가가 나를 위한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의 장소는 마가의 어머니의 집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주인이 자기의 방을 요구했던 것처럼 객실(사랑방)을 요구하십니다. 이는 요청이 아니라 부르심입니다. 그 방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의 다락방(행 12장)으로 120명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했던 The Upper Room(행 1장)입니다. 오늘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 가정이 마가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가 받은 신령한 축복을 같이 나누어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복, 신령한 복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기복주의 신앙으로 흐르게 됩니다. 이는 가정의 비전의 부재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은 이 땅에서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면 가난한 삶을 살아도 좋다는 신념(비전)입니다.

펜더믹의 시기를 지나면서 저에게 다가온 주제는 가정과 선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정을 사랑방이라고 부르십니다. 우리에게 나의 사랑방(객실)이 어디 있는가라고 찾으십니다. 마가 마리아의 사랑방에서 행하신 일이 세족식과 성만찬입니다. 이는 복음이 선포된 장소이며 우리의 발을 씻어 주시는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사순을 이 땅에 계셨다가 승천하신 후에, 120명이 성령을 기다리며 오순절이 되도록 열흘을 기도에 힘쓸 수 있도록 사랑방을 열어, 그 방이 초대 교회가 되었다면,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하실 때에 마가 마리아가 그 방을 열어 하나님께 올려 드린 것은 신령한 축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연전에 청년부 사역을 하던 저에게도 같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집을 열어 마련한 식사의 섬김과 헌신이 중국에서 선교의 헌신으로 이어지는 한 집사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초청된 식사의 자리가 한 밀알로 심겨져 열매가 있는 큰 거목으로 자라가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속성입니다.

“홑이불을 두른 청년: 요한(히브리식 이름) 마가(로마식 이름)”신령한 복은 그녀의 아들에게 옮겨 가게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아들인, 마가는 자기 집에서 사도들과 교류하게 되었을 것이며, 성경의 역사에 의하면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1차 선교여행을 떠나는데 이들이 당한 위험과 고난(참고, 고후 11:23-27)으로 말미암아 견디지 못한 청년 마가는 밤빌리아의 버가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로 인하여 큰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고 갈라집니다. 바울과 실라는 2차 선교 여행을 떠나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 섬으로 갑니다. 아마도 구브로는 마가가 쓰러진 곳이었을 것입니다.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간 것은 마가를 위로하고 권면하여 다시 서게 하려는 바나바의 노력입니다. 이 노력은 결실을 맺어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바울의 유언의 서신)에서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로마의 감옥으로) 오라고 간곡히 말합니다. 또한 베드로는 전서에서 이는 나의 영적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가는 사복음서의 첫 번째 책으로 알려진 마가복음의 저자가 됩니다. 마가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펼친 것으로 AD 60년 경, 복음(좋은 소식)이라는 단어는 오직 신의 아들이라는 로마 황제에게만 쓸 수 있었는데, 마가복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말로 담대하게 시작합니다.

이러한 신령한 복이 여러분의 가정을 통하여 사모하고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신령한 복의 시작은 주인이 자기 것을 선포하는 내 사랑방이 어디 있는가의 요청으로 시작합니다. 이 요청에 응답하여 사랑방을 여는 것이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사랑방이 예수님의 핏값으로 사신 말씀의 터, 헌신의 터, 그리고 사도들의 터가 된 마리아의 다락방처럼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열방의 복이 되신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 가정에 비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를 모신 한 가정입니다. 이 가정에 일꾼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에 준엄한 경고를 받은 신령한 교회(일꾼들이)가 되어 정결하게 되어 복음을 전하고 마지막 날에 영광의 찬송으로 올려드릴 수 있는 우리 가정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