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들 중에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삼손 이야기일 것입니다만은 단일 사건으로 가장 긴 사사의 이야기는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의 삶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기드온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투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사기에는 두개의 사이클이 있습니다. 하나는 죄악의 사이클이며 다른 하나는 은혜의 사이클입니다. 이스라엘은 또 범죄하고,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치하시려고 이방민족을 부르십니다. 기드온 이야기도 죄악의 사이클로 시작합니다(6:1). 미디안은 유목 민족입니다. 유목민은 정착민이 아닙니다. 추수 때가 되면 압도적인 수(십삼만 오천 명)와 약대로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7년간 약탈해 가고(6:3-5) 지독한 압제를 가했으므로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산으로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이 극심한 침탈의 결과 이스라엘은 7년 동안 반복되는 피토하는 듯 한 이 궁핍함과 고통을 감내하여야 했던 것입니다.
이민 생활은 극심한 고통의 삶이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더 절박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소망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도 여호와께 부르짖게 됨으로(6:6). 부르짖음과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문제(환경) 해결을 위한 사사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죄의 해결)을 위하여 말씀의 종을 보내십니다. 문제 해결 이전에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면 짙은 어둠(겨울) 속에서 새벽 미명(새봄)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들리게 되심을 바랍니다.
선지자의 질책은 너희가 하나님의 강한 구원의 팔을 잊었다는 것으로 이방신들을 두려워하게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6:10). 압제와 두려움이 올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두려움으로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드온이라는 한 사사를 세우십니다. 기드온은 두려움으로 포도주 틀(욕조 같은)에서 밀을 까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용사라고 부르십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큰 용사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이 부르심이 오히려 기드온에게는 쓴 뿌리가 되었습니다(6:13). 어찌하여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현실과 믿음의 괴리에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꿈쩍하지 않는 암담한 현실에 성경 말씀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설득하고, 변호하고, 이해시키지 아니하시고 순종을 명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걷게 되면 하나님의 임재와 강한 팔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계산하면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은혜로 그 아이를 키웠다고 말을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고 기도 한 것 밖에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은혜로 광야의 생활을 이어갑니다. 광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순종함으로 주신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라는 것 즉 순종하는 것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이 너의 힘으로’이스라엘을 미디안에서부터 구원하라는 말씀을 받습니다. 기드온은 삼백 명의 군사와 함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붙들고 십삼만 오천 명의 미디안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15절). 내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아직 기드온은 그 자신에게서 힘을 찾고 있습니다(15절) ‘이 너희 힘’은 전능하신 하나님, 내가 반드시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것은 삼위일체의 능력으로 모든 족속에게 말씀을 전하라는 것인데 (제자들의 어떡해요 라는 질문에) 그 힘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급, 위로, 보호, 충만함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 은혜의 표징을 요구합니다(17절). 기드온에게 주신 이 은혜의 표징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입니다. 기드온은 예비한 예물을 바위에 올려놓는데(20절) 여호와의 사자가 지팡이를 이 제물에 대자 바위에서 불이 나와 태워 버립니다(21절). 레위기의 첫 제사는 제단에서 불이 나와 제물을 살라버린 것입니다. 이 표징은 하나님께 같이 하시고 이 제물(예배)을 기뻐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예배를 받으셨다는 은혜의 표징은 예배 자리에서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 표징은 함께 하신다는 것이며 열납되었다는 것으로, 그 예물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흠없고 점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 제물이 되어 십자가 제단에서 드려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에게 하나님께 참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23-24절). 기드온은 예배 이전에는 하나님을 뵙고 나서 자신은 죽을 것이라는 연약한 사람이었는데, 예배 후에는 영안이 열리고 참된 두려움으로 자신의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세상 신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참된 두려움으로 함께 하는 것이며, 화목(샬롬)입니다(24절). 예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하나님의 평강이라면 이 예배를 받으신 것이며 은혜의 징표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에게는 가족과 친지가 있지만 각자의 십자가를 져야할 고난의 몫이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나아가 예배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지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예배를 언약의 징표 되게 하시고 샬롬에 거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