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6일] 사사기강해(9) 금에봇을 입은 기드온(8: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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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드온의 세 번째 설교로 삶의 마무리입니다. 기드온의 출발(부르심)이 좋았고 과정(전쟁)도 좋았지만 결말(마무리)이 좋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삶, 업적이었다 하더라도 인생의 결말이 나쁘면 감동이 없습니다. 변질된 솔로몬 인생도 마찬가지이며,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의 변질된 사역자들의 삶의 궤적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마감할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과 그의 후손들을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이것은 성공 후에 다가오는 대가(시험)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의 대답은 ‘나와 나의 자녀 누구도 너희를 다스리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이 다스릴 것이다’(사사기의 주제이며 신앙고백)이라고 거절합니다. 그러나 그의 말과 행동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를 정승호 목사님은‘기드온의 선언은 분명한 신앙고백이지만 그 행동은 은밀한 우상숭배이다’라고 정의합니다.

기드온은 전쟁의 전리품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역사적으로, 아말렉과의 전쟁을 치룬 후에 전리품을 챙긴 사울과 전리품을 숨긴 아간과 전리품을 이방에게 자랑한 솔로몬이 전쟁 노획물을 다룬 결과는 모두 같습니다. 솔로몬의 전리품은 그의 자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전리품 중의 금귀고리를 모두 달라고 합니다. 백성들은 각종 패물을 내어 놓는데, 금귀고리만 45LB(현재 시가 백이십만불정도) 정도였습니다. 그에게 바쳐진 귀한 자색 의복은 귀족 혹은 왕족의 것으로, 비록 기드온이 왕의 자리는 거절했지만 왕의 처우는 요구한 것입니다. 민 31장에는 미디안과 전쟁에서 귀중품의 처리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귀중품을 둘로 나누어 첫째, 군인들의 몫의 500분 의 1이 하나님께 바쳐져서 제사장에게 돌아갔고, 둘째, 일반인의 몫의 50분의 1이 제사에 종사하는 레위인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선봉장 비느하스에게도 공평하게 돌아갔으며, 전리품을 나누기 위하여, 군사를 계수해보니, 군인의 숫자는 단 한사람의 생명도 손실도 없었으므로(민 31:48-50). 그들이 받은 전리품(영광)들을 헌금(속전)으로 드리므로 지도자(제사장)들은 그 영광들을 온전히 회막에 드려 기념을 삼았습니다(민 31:54).

하지만 기드온은 그 전리품으로 자기에게 달라고 하여 에봇(제사장의 겉옷) 하나를 만들어 회막에 두지 않고 오브라의 자기 집에 모셔 두므로 신전처럼 된 기드온의 집에 온 이스라엘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그 에봇을 우상으로 숭배하게 됩니다. 어디가 회막인가, 누가 구원자인가 헷갈리게 되어 우상을 숭배하는 올무가 되게 됩니다. 우리는 인간으로부터 영광을 취하고자 한 허탈한 인간(기드온)의 결말을 보게 됩니다. 첫 번째 우상인 아론의 황금 송아지와 금 에봇의 그 죄는 똑 같습니다. 반복되는 것은 영광을 사람이 취하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취하면 우리의 선한 일(선행, 구제, 직분, 봉사, 선교)이 우상숭배가 됩니다. 오히려 선한 일을 하면서 우리는 내면으로부터 무너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일찍이 목회자가 되기로(제 삶을 드리기로) 결심했는데, 가장 존엄하고 의미 있는 일을 다루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혼이 죽고 사는 일이 가장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9세기의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자기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젊은이들은 목회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초대교회의 야고보 사도는 너희 중에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12)고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8년 동안의 고난에서 이스라엘을 구해낸 기드온의 요구는 정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 바쳐져야 할 영광을 자신이 받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온 평생을 목회에 바쳤다는 생각에 잠긴(공로주의의 덫에 빠진) 사역자들에게 보상이 없다는 마음이 쓴 뿌리가 되어 잘못된 행동(차디찬 행동)으로 나타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복음과 부름을 들어도 마음에 생동감이 없다면 정직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발가벗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 보십시오.

이러한 오류(위기)는 전쟁 중에 나타나는 것(사역 현장에서)이 아니고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나누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하지만 전리품(면류관)으로 주님을 높이면, 주님(어린 양)의 손과 발에 상처가 영광중에 빛나는 것으로 기쁨과 영광의 예배가 됩니다. 삶의 전리품(순종의 열매)을 가지고 주님을 높이고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 인생에 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명령받은 바를 모두 다 행한 후에 무익한 종이라는 고백(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비록 왕도 처첩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하였는데(신 17:17), 왕과 같은 권위와 부와 명예를 가지고 살아간 기드온이 40년 동안 남긴 것은 많은 아내와 많은 아들들 이었으며(8:30-33), 세겜(이방)여인 첩과 아들을 두었는데, 그 이름이 아비멜렉(‘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입니다. 기드온의 고백은 소박하지만 행동은 왕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 아비멜렉으로 인하여 사사기의 가장 어두운 장(9장)이 펼쳐집니다. 그는 이방(바알) 신전의 용병을 사서 이복형제 70인을 요담 하나만 남겨 놓고 모두 일시에 한 바위에서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스스로 왕이 된 아비멜렉은 여러 사건 끝에 데베스의 한 여인이 던진 맷돌짝에 머리를 맞아 죽게 됩니다(9:1-57).

이렇게 우리는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기드온 가문과 가정의 몰락을 가져오는 상처와 아픔을 보게 됩니다. 기드온이 인생의 마무리의 지혜를 잘 깨닫지 못하고 그 끝을 잘 마무리 하지 못하므로 그의 인생은 그 업적이 기억되지 않는 허무한 것이 되어 버리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의 죽음 후에 바알을 섬기고 기드온 가정은 잊혀집니다(8:34-35). 생전의 기드온에게 빚을 다 갚았다는 것이며 후대(자손)에 남길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계속으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오른손의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 6:1-4). 하지만 은혜가 자녀들에게 흘러간다는 것은 개혁주의 신학으로 아브라함, 야곱,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대표됩니다. 여기에 우리가 종으로 살아가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구약의 역사는 인류 실패의 역사입니다. 안 그럴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가장 어려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주신 은혜로 믿음을 보존할 것이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바울은 죄 없음에도 2년, 2년 모두 4년을 감옥에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감옥에 4년을 가두어 두신 것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밖에서는 바울을 죽이려는 40명의 혈맹의 결사대가 조직되어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행 23:12-14).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존하게 하시려고 감옥 같은 곳에 우리를 두시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업적과 부유함이 없고, 존경받지 못해도, 우리의 자랑이 무너지고, 우리가 받는 억울함과 수치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며, 우리의 영혼(신앙)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증명되었는데,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공로를 찾지 않고) 우리의 인생을 올려드릴 때에, 이 땅을 살아가면서 받은 비난을 하늘의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과부의 두렙 돈과 같은 삶을 올려 드릴 때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할 때라도, 바울이 차디찬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 찬송과 영광을 드린 것(행 16:22-25)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모든 영광과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드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