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예배에 대한 단상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전도서 5:1-2)

참된 예배의 회복에 대한 갈망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참된 예배는 어떻게 드려지는가?’에 대한 답을 전도자의 지혜를 통해 묵상합니다. ‘전도자’(코헬렛: 설교자)는 성도가 회복해야 할 참된 예배를 단지 ‘하나님의 집’을 출입하며(장소), 제물을 드리는 것(방법)으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형식이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자’로(존재)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자의 내면의 중요성을 전도자는 강조합니다. 전도자는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집’에 출입할 때, “네 발을 삼갈지어다” 주의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발을 삼갈지어다’라는 구절은 예배자의 중심이 드러나는 태도, 습관들 그리고 삶의 방식을 주의하고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지혜 문학에서 ‘발’, ‘걸음’ 등은 행동을 가리키는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시편 1:1) 의인들의 길과 악인들의 길은 다릅니다. 삶의 방식이 다르고, 방향이 다릅니다. 죄로 인해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 없이 터져버린 상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문턱만을 출입하며 헛된 제물을 드리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탄식했던 것처럼(이사야 1:12-13), 성전 뜰만 밟는 예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자가 되기 위해 먼저 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것은 우매한 영적 상태로 희생제사를 드리는 것 보다,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러 말하는 자가 아닌 ‘말씀을 듣는 자’가 될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나아가 주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자신의 발을 삼가’하며 내면을 주의 깊게 살피는 자입니다. 예배의 자리에 문턱만 넘는 관객의 자리가 아닙니다. 겸비한 마음,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세리의 심정으로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 탄식하며 주의 임재를 갈망하는 성도가 참된 예배자입니다.


펜데믹 이후, 오늘의 교회는 ‘무너져 버린 예배의 제단을 어떻게 다시 회복할 것인가?’를 질문합니다. 참된 예배자들을 세우는 것은 단지 형식을 새롭게 하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전에도 지금도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형식을 갖춘 우매자의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집’ 거룩한 임재 속에 나아가는 우리의 영혼 심령이, 삶의 방향성과 전 존재의 걸음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모습으로 드려지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갈급한 심령, 겸비한 마음으로 주의 얼굴 구하며 그 말씀을 듣는 참된 예배자로 회복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