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하나님의은혜

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발을 절더라(사무엘하 9:13)

교회 안에서 ‘은혜’라는 단어만큼 남용되고, 잘못 오해되는 단어도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일들 하나에도 ‘은혜가 있다, 없다’를 논하면서 우리는 모든 것에 ‘은혜’를 대입합니다. 그러나 늘 ‘은혜’를 말하지만 정작 ‘은혜란 무엇인가?’ 설명하려면 너무나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매주 우리는 다윗의 생애를 추적해 가며 다윗의 삶 속에 투영되는 ‘그리스도와 복음의 은혜’를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왕의 식탁의 초대’를 통해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헤세드의 은혜’를 함께 묵상했습니다. 설교는 더하는 것 보다 빼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던가요.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며, 제 마음 속에 계속 맴돌았지만 결국엔 제외해 두었던 한 가지 예화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필립얀시는 그의 책,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서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의 스토리를 통해 은혜를 추적하는 그의 여정의 서두를 시작합니다. ‘바베트의 만찬’은 덴마크 출신 작가인 카렌 블릭센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단편영화입니다. 덴마크의 가난한 작은 어촌 마을에 루터교의 금욕주의 분파의 영향을 받은 몇 가정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목사에게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었는데, 두 딸은 아버지의 금욕주의적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아 평생을 독신으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소천하신 후에도 두 딸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성도들 몇 가정을 섬기며 생활을 이어갑니다.  마을 주민들은 평소에도 단출한 음식에 주로 검정색 옷을 입고 세상을 등진 것 같은 금욕주의적 신앙생활을 이어갑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들의 실상을 보면 성도들은 서로 헐뜯고, 시기하고 다투는 불편하고 불안한 일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생기를 잃어버린 마을에 어느 날 프랑스의 내전 중에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도피한 ‘바베트’란 이름의 한 여인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마을 주민을 목회하는 두 자매를 도와 집안일을 도와주며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12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바베트는 프랑스의 친구를 통해 자신이 거액의 복권에 당첨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고,  마을 주민들은 이제 바베트가 많은 돈을 가지고 마을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베트는 두 자매에게, 소천하신 자매의 아버지 목사님의 100주년 기념 만찬을 마을 주민들을 위해 열고 싶다는 뜻 밖의 제안을 받게 되고 잔치가 준비됩니다. 만찬이 열리는 날, 시골 마을 주민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진귀하고, 값진 최고급 프랑스 요리들로 맛보게 되고, 훌륭한 저녁 식사를 함께 나누며 담소를 나누는 마을 사람들은 어느새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고 밝은 웃음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모든 만찬이 끝난 후에, 마을 사람들은 바베트가 이토록 훌륭한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이 받은 당첨금 전부를 쏟아부어 값진 식사를 마련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찬을 마쳐가는 자리에서 한 사람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모두 은혜란 우주 안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어리석고 시야가 짧다 보니 하나님의 은혜 마저 유한한 줄 압니다… 눈이 열리는 순간에야 은혜의 무한함을 보고 깨닫게 되지요. 친애하는 여러분, 은혜가 요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기다리다 감사로 인정하면 그 뿐입니다.

바베트의 만찬을 통해서, 그리고 다리를 저는 자 므비보셋을 왕의 식탁의 자리에 초대한 다윗을 통해서… 아니, 무엇보다도 원수의 목전에서도 ‘상을 차려 주시고, 넘치도록 기름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던 다윗의 고백을 통해서 내게도 임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합니다. 받을 자격 없는 나와 같은 죄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 그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더욱 깊이 경험하고 고백하는 우리들의 삶이 되기 원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