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사사기강해(5) 왼손잡이 에훗 (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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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에서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죄악)으로 시작합니다. 어떤 역사가는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교훈과 지식과 각성으로 우리는 변화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죄성은 교훈자를 통해 고쳐지지 못하므로 그를 위해 구원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사이클이 존재하는데 이는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은혜의 사이클이며, 이 은혜의 사이클은 언약을 견인하고 보존해 가시며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악의 사이클의 마침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입니다. 모압왕 에글론으로 인하여 전쟁을 모르는 이스라엘에게 은혜의 목적을 알게 하십니다(3:2).

직면하는 문제가 우리 삶의 실재가 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존재하며(흐르고 있으며) 우리에게 전쟁에서 싸우는 법을 알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의 보존입니다. 믿음은 확신입니다. 싸움을 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알아가고 믿음의 부유함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오른손의 아들들이라고 표현되는데 그들이 구원받는데 쓰이는 자는 왼손잡이 에훗입니다. 누가 이를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른손이 묶인 자(3:15) 라는 표현은 오른손이 장애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3:21). 이 에훗은 조공 곡물을 모아 바치는 자였는데 이 장애로 인하여 에글론 왕을 독대(직접 대면) 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탁월하고 월등한 자를 찾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이 기준을 적용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우리는 모두가 조금씩 여러 가지로 삶에 묶인 자입니다. 모세의 예를 보십시오. 그가 모든 것을 잃고 목동으로 광야에서 살아갈 때에 부르심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쓰시는) 기준은 누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가 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깨끗한 자이며 연약한 자입니다. 사람의 연약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광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를 기드온 300명의 용사의 예를 통해 보여 주십니다. 연약한 군대를 통해 승리의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약함과 어려움과 묶임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섭리와 계획에 대한 확신(마음으로의 화해)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 하시면서 나에게는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가, 이러한 마음의 쓴 뿌리는 언제까지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실 것인가를 묻습니다. 복음의 꽃피는 자리가 아니고 장벽이 우리의 앞에게 자리 잡고 있을 때 우리는 위장하기 쉽습니다. 남편을 먼저 하나님께로 먼저 보낸 남겨진 아내가 강하게 보이는 것 같으나 사는 것이 막막하여 실로 두려움에 쌓여있는 것입니다. 코로나의 사태 안에 우리는 서로 만나지 맙시다가 현실입니다. 이러한 막막한 현실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위장된 기도를 할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위장된 기도를 올리는 경직된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문제점을 쏟아낼 수 있는 진실한 골방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연약함의 끝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왼손잡이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셔서 고난과 고초를 당하셨으며 가장 가까운 자에 의해서 배반을 당하셨고 마지막 일주일(수난의 영광)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로 있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순종의 길이며 온전한 재물로 드려진 것입니다. 우리의 극심한 어려움의 끝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를 치유하기 위하여 상함을 받으셨고 우리의 자유함을 위하여 묶인바 되셨습니다. 은혜의 풍성함은 약함에서 비롯됩니다(고후 12:9). 은혜가 흘러가면서 구덩이가 파인 곳에 은혜가 쌓이게 됩니다. 그 곳은 그리스도의 풍성함이 머무는 곳이 될 것입니다. 복음은 약함의 미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약함의 역설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최고의 적용은 예수님의 비유(기도하면서 낙심하지 말 것)로서 ‘재판관 앞의 과부의 비유’입니다. 과부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완전히 묶인 자입니다(최고로 약한 자입니다). 그 과부 옆에 대적, 원수(불의한 자)가 있고, 그로 인하여 과부에게 원통함이 있어, 재판관 앞에 나가가게 되는데, 그 재판관도 불의한 자이므로 그 과부는 계속 밤낮으로 부르짖게 됩니다. 끊임없는 기도에 의하여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의 호소를 들어 주는 것입니다(눅 18:7).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부르짖음을 들어 주었는데, 우리에게는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해 주님의 은혜가 임하여서 선하신 재판관은 우리의 호소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구절(18:8)은 반전입니다, 기도로 원한은 속히 풀어지지만 인자가 오실 때까지 믿음이 보존되겠느냐 입니다. 이렇게 물으시는 것은 이 땅에서 기도 응답을 받는 것보다 오히려 죄악 가운데 우리의 믿음을 보존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마지막 고백은 우리가 어려움을 보냈지만 하나님께서 믿음을 보존해 주셨다는 것일 것입니다. 약함의 역설은 믿음으로 어려움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라는 것으로 더 높은 부르심을 말합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이 어려운 시간들을 통하여 나를 붙들어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믿음의 보존). 주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이며 믿음을 보존하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라. 믿음으로 찬송하는 자,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 받는 자, 이것이 예배자의 자세입니다.

사사기 3장에는 또 한사람의 사사가 나오는데 한 줄로 표현된 삼갈입니다.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표현은 소모는 막대기를 사용하는 평범한 자인 삼갈이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입니다. 내 손에 무엇이 있는가보다 하나님께 붙들림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통하여 주님의 크신 뜻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오른팔이 되어 주셔서 주의 일을 이루게 하실 것을 말씀합니다(출 15:6, 시 17:7, 63:8). 의로우신 주의 오른팔을 높게 드시사 주의 권능을 보여 주셨습니다. 일상의 아픔과 눈물 속에 누가 나를 붙들고 있는가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도전으로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베드로는 ‘물에 빠져가는 예’(마 14:29-31)를 통하여, 믿음으로 물 위를 걸을 수 있더라 그리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물에 빠진 나를 구해 주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는 자들이 되실 것을 축복하고 기도드립니다. (설교요약: 이학진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