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를 읽으면서, 예수님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었는지요? 제자의 길을 걷다보면 누구나 당혹스러움의 훈련을 받는 시간을 지나게 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팔아 모든 삶을 주를 향한 사랑을 위해 던지는 것이 기쁨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앞서 가시는데 매우 낯설게 보입니다.” 이번 과에서는 세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의 뜻에 다가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가나안 여인이 간절히 부르짖었다. 딸이 귀신 들려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여자를 돌려보내지도 않으시고 받아 주지도 않으신다. 일부러 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그냥 듣고만 계신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해결을 청한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의 말을 무시하신다. 사태를 해결하시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시키신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 가나안 여인은 이 말에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그분의 말밑에 엎드려 “주여, 저를 도우소서”(마 15:25)라고 간청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더 화를 돋구는 응답을 하신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마 15:26). 여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번 더 간구한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 15:27). 예수님은 그녀에게 마침내 말씀하신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 |
적용질문 · 예수님이 가나안 여인의 청원을 세 차례나 거절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 예수님이 정말 보고 싶으셨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 기도가 단지 요술방망이라면, 예수님은 여자의 딸을 즉시 고쳐 주셨을 것이다. 예수님의 모호한 태도는 관계와 믿음을 형성해갔다. 기적이 너무 빨리 오면 관계와 믿음 성장의 여지가 없어진다. |
부활의 첫 아침 마리아를 만나신 예수님은 그분의 정체를 감추신다. 마리아는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분이 동산지기인 줄로 알았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 하셨으니 마리아는 울 필요가 없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더 선명하고 충분하게 나타날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일부러 그녀를 압도하지 않으신다. 그녀의 혼란과 당황스러움은 예수님이 “마리아야!” 그녀의 이름을 부르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때론 우리는 하나님이 더 잘 보였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우리 중에 많이 있다. 우리 생각에는 그분이 더 잘 보이거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며, 믿기가 더 쉬워질 것 같다. 고난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확실히 말씀해 주시고, 이야기의 결말을 알려 주시고, 무엇보다 그분 자신을 보여 주시기를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그분이 즉시 자신을 다 보여 주신다면, 모든 의문에 답해주신다면, 우리는 결코 자라지 못할 것이다. 끝까지 유아 상태로 남아 영영 번데기 고치에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
지난 25년 동안 아내는 킴을(장애인) 두고 하나님과 씨름했다. 매주 가족들이 모여 기도할 때마다 아내는 힘과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곤 했다. 하루를 끝까지 버틸 힘,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었다. 아내는 늘 “주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을 주세요. 제발 킴이 말을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킴이 말을 시작한 나이는 25세 때였다. 하나님은 아내의 믿음을 키우시고 그분과 더 잘 소통할 수 있게 하시려고 아내를 혼란 속에 두셨다. 예수님이 가나안 여인에게나, 아내에게나 모호하고 낯선 모습으로 계셨기에, 이들은 예수님과 생생한 관계를 누릴 만큼 믿음이 성장했다. 영적 공백 상태에서 끝까지 견디고 모호한 기간을 잘 버티면, 하나님을 알아가게 된다. 누구도 그분처럼 일하지 못한다. 그분은 참으로 영혼들을 사랑하시는 분이다. |
적용질문 · 나의 믿음 성장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나의 믿음과 인격이 성장했을 때는 언제입니까? · 당시 하나님은 내게 어떤 시간을 보내도록 허락하셨습니까? |
누가복음 18:1-8을 읽어봅시다.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를 통해서 정말로 예수님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봅시다. |
제자의 길에서 당혹스러움의 훈련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실 제자의 길 가운데 위험은 자신의 작은 열정에 묻혀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당혹스러운 상황이 오면 그 어두운 상황이 끝날 때까지 잘 견디십시오. 때가 되면 주님을 따르는 것이야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