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한동안 교회 안에서 수 없이 많이 불렀던 복음찬양입니다. 신학적으로 인간 존재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지를 반문하는 이도 있습니다. 동의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적어도 목회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사랑받고 사랑하기 원하는 존재’라는 것을 거듭 깨닫고 경험하게 됩니다. 타문화권 안에서 처음 이민 교회를 섬기며 목양 사역을 할 때 (한길 공동체 이전에) 적잖이 당황하며 적응하기 쉽지 않았던 부분이 한 가지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처음 이민 교회 안에서 성도님들과 교제를 할 때, 많은 성도님들이(거의 대부분)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에게 질문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웠습니다. 주로 성도님들께서 자기 이야기만 나누는 것을 보며 참 의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목양적인 관계 안에서 성도님들께서 자신의 문제 상황과 기도제목들을 나누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목양적 관계 안에서 저는 오히려 말하기 보다 성도님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목회상담이나 심방에서의 대화가 아니라, 일상의 대화에서 관계를 형성해 갈 때의 대화 패턴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관계를 형성해 가는 일상의 대화 속에서조차 적잖은 지체들이 대화를 주도하며 주로 자신에 관한 이야기만 풀어갑니다. 대화의 주제의 초점은 많은 경우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리는데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상대적으로 너무 적습니다. 그리고 그런 대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표출되는 인격의 민낯은 열등감과 교만이 교차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긴 대화를 마치고, 헛헛함이 남는 교제를 뒤로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관계 속에서 열등감과 교만을 반복적으로 표출하면서까지 인정받으려고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인간 본성을 묵상하며 생각이 닿게 되는 것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은 처음부터 존귀하게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은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그 존귀함을 평가할 수 없을 만큼 가치 있게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형상이 세상의 기준으로 존재를 평가받을 때 영혼은 깊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우리의 이웃들이 그토록 세상의 깨진 기준을 통해서라도 자기를 드러내고,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소중한 인격입니다. 그 한 영혼,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보다 더욱 사랑하셨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위해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전부를 내어 주셨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흘려 보내시기 위해 어머니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평가가 아닌 용납으로, 판단이 아닌 사랑으로 서로를 받아내고 한 몸을 이루는 한길 공동체 되길 원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한길 교회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