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땅 위에 오고 가는 세대와 하늘 공간을 운행하는 태양, 그리고 자유 분방하게 움직이는 바람과 유연하게 흐르는 물을 살펴보았으나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은 없었다 (전도서 1:1-11)

쉴 틈 없이 지속하던 사역을 잠시 멈추고, 뒤늦은 나이에 가족들을 이끌고 다시 배움의 길에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몸에 베어 있는 관성은 여전히 마음의 쉴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 보다 오히려 감당해 내야 하는 책임이 더 크게 느껴지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마음의 쉴 공간이 마련되기 시작했던 시점이 있었습니다.  하늘을 바라 보면서부터 였을 것입니다. 바삐 사역하던 시기에는 한 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맑은 ‘하늘’이, 빌딩 숲에 가려져서 눈을 들어 바라보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푸른 ‘구름’이 제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세계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조금의 모자람이 없다고. 각각의 그 모양과 색도, 조화로움과 이치도 어느 것 부족함이 없다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만물이 하나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란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번역하기도 했던 이종태 교수는 그의 책, ‘경이라는 세계’(복있는 사람)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밤하늘 바라보며, 별을 그저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가스 덩어리로 인식하는 세계관을 통해서는 텅 빈 영혼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변론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잃어버렸던 경이로움을 회복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 인생들은 단백질 덩어리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영혼으로 재정의됩니다. 그리고 그 영혼의 시각으로 다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해 아래 세상’에서 추구하는 인생의 일들이 새롭게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해 아래에서, 만물은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매일 아침, 어김없이 동에서 뜨는 해는 변함없이 서편으로 저물어 갑니다. 변화하고, 생성하며 소멸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입니다. 그 속에서 인생들도 움직입니다. 쉼 없이 수고하며, 무언가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경이로운 세계’ 너머에 계신 창조주를 인식하는 전도자는 인생들이 추구하는 그 모든 것들이 ‘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될 뿐’이라고 탄식합니다. 한 세대가 가고, 또 다른 세대가 새로움을 시작할지라도 결국 ‘해 아래 세계’에서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영원한 것을 발견하기 원하는 인생들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근원이 어디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해 아래 세상’이 아닌 ‘영원’을 생각할 때에만 우리 인생은 참된 의미와 목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새로움을 기대하는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에게 ‘해 아래의 새것’이 아닌, 영원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믿음의 시각이 열리기 바랍니다. ‘오직 마음을(심령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된 새 사람’을 회복하는 풍성한 은혜와 복을 누리시는 한 해가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