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존 번연의 <천로역정>의 한 대목에 나오는 스토리입니다. 크리스찬소망이 천성을 향한 순례길에 함께 동행합니다. 그런데 동행길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즈음 험한 길이 눈 앞에 들어옵니다. 길 위에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라는 푯말이 붙어있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라는 이정표의 설명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그 이정표를 본 크리스찬소망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길 왼편으로 편안하게 보이는 다른 오솔길이 두 사람의 눈에 보였고, 다른 길에 크리스찬의 마음이 끌렸습니다. 두 사람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고 처음에는 육신의 소욕대로 편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 같이 퍼붓더니 길 위로 물이 넘쳐나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깨닫고 빠져 나갈 길을 찾았지만 찾지 못합니다. 그리고 길을 잃은 두 사람은 막다른 길에서 의심의 성에 들어서게되고, 그곳에서 절망 거인에게 사로잡혀서 의심의 성에 갇혀 며칠을 보냅니다. 크리스천소망은 깊은 영혼의 밤을 지나게 됩니다. 그리고 절망의 어둠 속에서 크리스찬은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고, 기도 속에서 크리스찬은 가슴 속에 간직해 두었던 ‘약속’’이라는 열쇠를 떠올리게 됩니다. 약속의 열쇠를 가지고 성을 탈출하는데 성공한 두 사람은 의심의 성에서 나와 기쁨의 산으로 향합니다.

새롭게 열어가는 한 해, 한길 공동체가 붙들고 나아가는 약속의 말씀은 로마서 15장 13절입니다. 우리 모두는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주님만이 참된 소망되심을 고백하며 믿음의 길을 내딛습니다. 비록 우리 삶에 지나온 시간들을 헤아려볼 때, ‘기쁨과 사랑의 노래(아가)’ 보다 ‘슬픔의 애통의 탄식의 노래(애가)’를 불러야 할 때가 더욱 많았던 얼룩진 우리 인생이지만 우리는 다시 ‘소망’을 노래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살아 있는 한 소망은 있다.” 생의 의지를 가지고 두 주먹 불끈 쥐고 희망을 노래하며 일어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게 막연한 낙관과 긍정의 기대만으로는 일어설 수 없습니다. 각자의 삶에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가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고, 더 이상 어떤 소망도 기대할 수 없는 짓누르는 무게일 수 있습니다. 사냥꾼의 올무에 갇힌 새처럼 절망의 상황에 갇혀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에 삼켜진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소망은 ‘나’에게서 나오는 소망이 아니라, 우리의 참된 소망되시는 ‘주님’으로부터 기대하는 소망입니다.

“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이 표어는 많은 성도님들께서 사랑하시는 새찬송가  484장의 제목에 근거한 것입니다. 아일랜드 켈틱(Celtic 켈틱 또는 셀틱) 교회의 전통 안에서 불려졌던 이 찬송가의 영어 가사 첫 소절은 “By thou my vision, O Lord of heart” 번역하면 “내 마음의 주여, 나의 비전이 되소서!”입니다. 한글로는 ‘소망’이라고 번역했지만, 이 비전(vision)의 본래 뜻은 “빛”, “계시”를 의미합니다. 세상의 욕망과 영광에 가리워졌던 우리 마음 눈이 주님께서 열어 주셔야만 참된 비전, 참된 소망이 보입니다. 계시의 완성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우리 마음에 다시 기쁨의 노래, 소망의 노래가 회복되는 복 된 한 해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