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느 1:1–2)
6·25전쟁 74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이 땅의 다음세대들에게 6·25는 생소한 기념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히려 지금 세대에게는 곧 다가오는 미국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의 공휴일이 더욱 의미 있게 여겨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6·25전쟁은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어릴 적 부르던 6·25의 노래처럼 잊어서는 안되는 조국의 가슴 아픈 역사입니다.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북한의 기습남침 도발로 시작된 6·25전쟁으로 인해 남북한이 입은 인명피해는 군인 전사상, 실종자가 126만 명에 달하고, 민간인 사망, 부상, 실종자가 249만 명, 유엔 및 중공군 사상자가 112만 명에 달라는 엄청난 물적, 인적 피해가 있었던 잔인한 전쟁의 참상을 보고합니다. 유엔을 비롯한 전세계 16개국의 도움과 희생, 헌신으로 대한민국은 자유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가슴 아픈 역사의 교훈을 기억하며 우리의 다음세대들에게 전수해야 할 귀중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교회가 이 땅을 살아가는 다음세대들에게 조국을 품고 사랑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느혜미야와 같은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가 멸망하고 70여년의 포로기를 지나며, 이스라엘은 3차에 걸친 포로 귀환을 통해 조금씩 회복되었습니다. 이 때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하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소명에 순종하지 않더라도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의 지위를 가지고 개인의 안정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환경에 있었습니다. 그런 느헤미야가 자신의 안녕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미 멸망한 조국 예루살렘의 형편에 관심을 갖습니다. 세속 질서의 중심 안에서 지배 계급 안에 있는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형편을 묻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합니다. 예루살렘의 많은 사람들이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 받고 있다는 비통한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수일동안 슬피 울며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하늘의 하나님 앞에서” 기도합니다. 조국을 위한 느헤미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 모두의 기도에도, 더불어 우리의 다음세대들에게도 잊혀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를 다시 회복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아름답게 쓰임 받는 믿음의 세대들이 일어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