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양쪽 모두에 끔찍한 파괴를 가져다 줄 수밖에 없는 비극입니다. 기독교는 [여호와의 증인] 들의 교리처럼 전쟁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허용합니다. 이는 나라의 정부는 외국의 공격에 맞서 자국을 방어하고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벧전 2:14). 그래서 우리는 나라가 부여한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한국), 미국은 군인으로 종사하는 분들을 깊이 존경합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는 십자군이라는 하나님의 뜻이라 말하며 자행했던 정복전쟁에 대한 과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칼과 창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신 것이 아니라, 겸손과 섬김 자기희생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정의를 이 땅에 이루셨다는 것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또 한 번의 전쟁의 소요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소요의 소문이 끊이지 않을 것은,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1865년 에 있었던 아브라함 링컨의 두 번째 대통령 취임사 중 일부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 안에 남북 전쟁에 대한 지도자의 고뇌와 기도가 담겨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전능자께서는 자신의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미국의 노예제도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없을 수 없었던 실족하게 하는 일들” 중 하나였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이 끝나 이제 하나님이 그것을 제거하고자 하셔서, 북부와 남부에 이 끔찍한 전쟁을 주신 것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매서운 전쟁의 채찍이 어서 끝나길 간절히 소망하고 열렬히 기도합니다. 하지만 노예들이 250년간 대가를 받지도 못하고 흘린 땀으로 쌓아 올린 모든 부가 다 소진되고, 채찍에 맞아 흘린 모든 핏방울이 칼을 뽑아든 다른 사람에 의해 보상 받을 때까지 이 내전이 계속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3천 년 전에 “여호와의 심판은 지극히 참되고 의로우시나이다”라고 했듯이, 지금 우리도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악의를 갖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대해 자애심을 품고 정의에 굳게 서서… 이 나라의 상처를 싸매고, 이 전쟁에서 산화한 사람과 그의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해 나갑시다. 정의와 평화가 모든 나라와의 관계 속에 정착되도록 최선을 다해 나갑시다.”

우크라이나에 우리 선교사님이 계셔서 더욱 마음이 쓰입니다. 전쟁을 앞둔 나라들 뿐 아니라, 새로운 대통령을 뽑고 있는 한국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